
신정아씨의 자서전 ‘4001’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출판계에 폭로성 짙은 자서전을 펴내려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근거 없는 ‘폭로 러시’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A출판사는 최근 한 수감자로부터 유명 연예인의 마약 스캔들을 폭로하는 내용의 자서전 출간 의뢰를 받았다. A사는 의뢰자가 폭력조직의 일원인데다 스캔들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어 출간을 거절했다. 그러나 A사는 교수 사회의 성상납 문제를 다룬 한 시간강사의 자서전을 다음달 출간하기로 했다.
B사는 특정 일반인을 비방하는 내용의 개인 블로그를 자서전으로 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C사도 올해 초 유명 가수의 두 번째 부인이라고 주장하는 이로부터 남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자서전 출간 의뢰를 받았으나 고사했다. 화제성이 충분하다 해도 출판사의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D출판사 대표는 “출간이 성사되는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과거에 비해 폭로성 원고가 많이 늘었다”고 말했다. E사 사장은 “신씨 자서전의 현재 판매 추세가 이어진다면 고발 성격 자서전이 계속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타인을 가십거리로 만드는 사회 풍조가 폭로성 자서전 출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했다. 사회학 박사인 김민환씨는 “대중이 유명인의 사생활을 확인하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사회가 됐다”며 “사회적 폭로 현상이 일반인도 개인적인 폭로에 나서도록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양에선 ‘자서전은 거짓말’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서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신씨 자서전 열풍이 한국 사회에서 자서전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 오랜 기간 비리와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것이 폭로 문화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비리나 부정부패가 많다보니 투명성이 바람직한 가치로 간주됐다”며 “‘알면 알수록 좋다’는 인식에 인터넷 등 기술의 발달이 접목돼 사회적 폭로 현상이 성행하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홍중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과거에는 사적으로 풀 수 있었던 문제도 점점 대중매체 등 공적인 해법을 동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업적·개인적 목적을 위해 타인의 사생활을 들춰내도 좋다는 자기중심적 사고와 판단이 사회에 만연된 것도 무차별적 폭로 현상의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했다. 현 교수는 “기록매체를 통한 무차별적 폭로는 당사자를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뜨리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신씨 자서전은 비슷한 상황에 빠진 다른 이들에게 ‘이왕 망가진 것 돈이나 벌어 보자’는 인식을 심어주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승욱 정부경 김미나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