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에서 자연발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가운데, 제조사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 결과가 엇갈리면서 벤츠의 ‘셀프 면죄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기관의 공식 결과보다 자사 입장만을 반복하는 벤츠의 행태가 반복되면서, 소비자 신뢰와 안전을 담보할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2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월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야외 공영주차장에 주차된 메르세데스-벤츠 차량에서 자연발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현장 CCTV를 분석한 결과 외부 침입이나 방화 정황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화재 원인 규명을 위해 국과수와 벤츠 자체 사고조사반이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국과수는 해당 사고에 대해 “현장에서 부품을 수거해 정밀 분석한 결과 동승석 도어 패널 내측 상단에 위치한 컨트롤 모듈의 일부 접속단자 부분에서 발화원으로 작용 가능한 불완전 접촉에 의한 전기적 용융흔과 탄화흔이 식별된다”고 밝혔다. 차량 내부 원인에 의한 화재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 것이다.

하지만 벤츠코리아와 딜러사 KCC오토는 제조사 결함 가능성을 부인했다. ‘비순정 배터리’가 장착되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비순정 배터리는 해당 차량이나 기기 제조사가 직접 설계·제조하거나 공식적으로 인증한 배터리가 아닌, 외부의 다른 업체가 제조해 판매하는 배터리를 의미한다.
벤츠 측은 “도어 컨트롤 유닛에서 합선 흔적이 없고, 주차 중 시동이 꺼진 상태에서는 순정 전기 시스템이 비활성화돼 과열 가능성이 없다”며 “제작사와 관련된 문제가 발생했을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차주 송민규씨는 “발화 지점이 엔진룸이 아닌 도어 패널 등 실내임에도, 벤츠는 엔진룸만을 근거로 발화 위치와 무관한 논리로 결함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다”며 “국가 최고 기관인 국과수 감정 결과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 송씨는 화재 사진만을 근거로 판단을 내린 벤츠 사고조사반의 정확도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화재 차량의 탄화된 보조석 차량 문과 트림·패널 잔해는 모두 국과수에서 수거해 감정했다”며 “벤츠 사고조사팀은 현장 감식 때 찍어간 사진 몇 장을 근거로 제조사 결함이 없다는 결과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벤츠 측은 “사진도 근거가 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이며, 정비 이력 및 차량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본사와 연계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벤츠의 태도는 과거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020년 세종시에서 발생한 벤츠 AMG E53 차량 화재 당시 국과수는 “ABS 모듈 전자부품 결함”을 명확한 화재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벤츠코리아는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해 본사와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국과수 결론을 즉각 수용하지 않았다.
이후에도 벤츠코리아는 “자체 조사 중”이라는 입장을 반복하며 공식 결과에 대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EQE) 화재 사건에서도 국과수는 “외부 충격에 의한 배터리 손상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하지만 벤츠는 국과수 결론에 대해 공식 인정이나 동의, 혹은 가능성 포함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국과수와 벤츠 조사 결과가 엇갈리는 것과 관련해 벤츠코리아는 “국과수 감정 결과가 반드시 우선되는 법적 근거는 없으며, 법적 분쟁 시 법원이 증거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입장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의 감정 결과가 법원 등에서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는 없다”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보호 기준이 모호한 데서 발생 반복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관계자는 “이번 일은 국가 최고 감정기관과 글로벌 제조사의 조사 결과가 상충하는 가운데 소비자 보호 기준이 모호해 발생한 일”이라며 “책임 소재와 보상 기준, 그리고 제조사와 국가기관 감정 결과의 우선순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