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덜어냄의 미학이라 했던가. 아르켓이 제시한 이번 가을·겨울 시즌 무드는 ‘심플 이즈 베스트’에 가깝다. 북유럽 감성을 바탕으로 한 스웨덴 브랜드 아르켓은 불필요한 요소들을 걷어내고 본질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시즌 무드를 풀어냈다.
24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위치한 아르켓(ARKET) 매장에서는 ‘25 AW 컬렉션’ 프리뷰 행사가 열렸다. 이날 현장에서는 오는 9월 공식 출시를 앞둔 컬렉션의 주요 제품들이 먼저 공개됐다.
이번 컬렉션은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디지털 시대를 배경 삼아, ‘단순함의 미학(Simplicity as elegance)’이라는 키워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스마트폰이 없던 1990년대의 느긋한 감성을 재현하되, 복고를 그대로 반복하기보다는 지금의 일상복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아르켓이 이번 시즌에 메인으로 선보이는 컬러감은 ‘웜’이다. 버건디, 카멜 등 이른바 ‘번트 뉴트럴’ 컬러가 중심이며, 밀크초콜릿 톤의 브라운 계열이 기본 베이스로 활용됐다. 올 초 SS25 컬렉션에서 주요 색상으로 쓰인 스카이블루는 이번 시즌 여성 셋업에서 카멜 컬러 바지와 매치돼 포근한 대비를 연출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직선보다 곡선에 가깝다. 코트와 가방, 신발 등 주요 아이템의 마감도 라운드 형태가 중심이다. 전반적으로 각을 최소화해 시즌 감도에 맞는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단순함이 주는 여백 속에서 디테일은 더욱 중요해진다. 지퍼, 리브 니트, 레깅스 등에서 드러나는 스포티한 요소는 전체적인 미니멀한 무드에 리듬감을 더한다. 전반적으로는 과한 포인트 대신, 아이템 간의 레이어링과 조합을 염두에 둔 구성이 중심을 이룬다.
소재는 단조로운 구성을 보완한다. 레더, 코듀로이, 스웨이드 등 계절감을 살릴 수 있는 소재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며, 부드럽게 흐르는 실루엣과 어우러져 착용감과 실루엣 모두에 무게를 둔 구성이다.
이러한 접근은 최근 패션 시장에서 부상하고 있는 ‘드뮤어룩(Demure look)’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드뮤어룩은 노출을 최소화하고, 장식적 요소보다는 소재와 구조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로고를 강조하거나 과감한 디자인을 덜어내고, 대신 정제된 형태와 단정한 무드로 세련미를 전달한다.
이번 컬렉션도 비슷한 기조 위에 놓여 있다. 드뮤어룩은 최근 조용한 럭셔리(Quiet Luxury) 흐름과도 맞물리며, ‘티 나지 않는 부티’를 추구하는 소비자 취향과 교차한다. 아르켓의 방식은 해당 트렌드를 실용성과 연결짓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속가능성은 이제 패션업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가치다. 이번 컬렉션 역시 이 점을 반영했다. 셔츠를 제외한 대부분의 울 제품은 재활용 원단을 사용했으며,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남성용 스웨터는 전통적인 페어아일 니팅 기법과 재생 울을 결합해 제작됐다.

가방은 스웨이드 소재를 사용해 겨울 느낌을 냈지만, 무게는 가볍게 맞춰 힘을 덜어냈다. 민소매 울 니트는 RWS(Responsible Wool Standard) 인증을 받은 원단으로 제작됐다. 전반적으로 컬렉션은 트렌드 반영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 방식과 소재 선정 단계에서의 실용성과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고려한 구조다.
이번 아르켓의 25 AW 컬렉션은 브랜드 정체성인 미니멀리즘을 유지하면서, 최근의 스타일 트렌드와 감도 사이에서 중간값을 찾으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시각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소재, 실루엣, 구조에서의 선택을 통해 전략적 조정이 가해진 형태다.
단순함 자체가 메시지이기보다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여지를 남기는 방식이다. 과도한 연출 없이 일상에서 소화 가능한 아이템들로 구성된 만큼, 소비자 입장에서는 스타일링 유연성이 핵심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