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는 인신매매에서 안전한 국가일까. 협소한 법 적용으로 인해 ‘사각지대’를 허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일 ‘2021년 인신매매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 각국의 인신매매 감시와 단속 수준을 평가해 등급을 매긴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영국, 호주, 프랑스 등과 함께 1등급을 받았다. 인신매매 감시·단속을 잘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 2003년부터 19년째 1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고용됐던 이주여성들의 증언은 달랐다. 일부 업소에서 성매매를 강제한다는 의혹이다. 이주여성 지원단체 등에 따르면 경기 한 업소에서 근무했던 이주여성들은 일정 포인트를 채워야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주여성을 지명한 손님이 시킨 음료·술의 값을 포인트로 전환하는 구조다. 그러나 음료와 술만으로는 약속된 포인트를 채울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성매매·유사성행위를 해야 했다.
성적 행위는 업소 구석진 곳에서 이뤄졌다. 칸막이나 방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행위를 지켜보는 손님들도 있었다. 2019년 성매매 업소를 탈출한 한 여성은 “내가 짐승이 된 것 같았다”며 울먹였다.
업무시간 외 외출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는 증언도 있다. 여권·외국인등록증 모두 업주가 갖고 있었다. “한국은 산이 많아서 너네 파묻어도 아무도 모른다” “여기서 도망가면 너네만 감옥 가고 본국으로 돌아갈 뿐이다” 등의 협박도 일상이었다.
성매매 피해 이주여성을 돕는 김태정 두레방 활동가는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한 이주여성들이 성매매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 일에 대해 자세히 파악하지 못하고 한국에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외국인 전용 유흥음식점뿐만 아니라 마사지사로 일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일부 이주여성들도 비슷한 피해를 받고 있다. 김 활동가는 “취업 사기를 당한 이주여성들은 도망가고 싶어도 선불금·여권압수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며 “도망쳤지만 결국 업주에게 잡힌 경우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불법을 강제하는) 업주들 대부분은 성매매 강요를 면피할 근거를 만들어 둔다”며 “여성들의 진술만 있기에 처벌이 어렵다”고 전했다.
인신매매를 범죄로 인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다른 범죄에 비해 발생 건수도, 기소 건수도 현저히 적다. 대검찰청 범죄분석 통계에 따르면 2019년 4건의 형법상 인신매매 범죄가 발생했다. 이에 가담한 24명이 검거됐다. 다만 기소는 2건에 불과했다. 2018년에는 5건의 범죄가 발생, 4건만 기소됐다. 2017년에는 3건의 범죄가 발생, 총 5건이 기소됐다.

현장 전문가들은 인신매매방지법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 활동가는 “인신매매는 중대범죄다.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며 “공포된 법은 피해자만 보호하고 가해자와 구조는 건들지 않겠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이어 “인신매매국가 평가 1등급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 없는 법을 만든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전수연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인신매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만들어진 법인데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이 법이 얼마나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는데 효율적일지는 미지수”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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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작=박시온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