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이들을 위한 오늘 [데스크 창]

웃지 않는 이들을 위한 오늘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05-01 12:34:23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본 적 있는가. 적어도, 나는 없다. 그을린 이마, 구레나룻을 타고 흐르는 땀, 입가에서 흩어지는 낮은 한숨이 내가 본 택배 근로자들의 모습이다. 웃으며 일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내 표정도 밝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얼굴이 자꾸 떠오르는 건 환경이 나아졌다고 믿는 사이, 근로자를 압박하는 방식은 더 은밀하고 정교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배송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며 택배사들이 ‘주 7일 배송’을 도입하고 있다. 배송 차 짐칸 가득 쌓인 상자를 이제는 새벽, 주말 할 것 없이 날라야 한다. ‘가족들과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지, 죽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택배 근로자들을 무시하고 쿠팡, CJ대한통운과 더불어 한진도 주 7일 배송을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가 세상을 떠나고 55년이 흘렀다. 그가 사망한 1970년 11월 이후, 한국 사회는 달라졌다. 노동법이 만들어졌다.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다.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산업안전보건법도 발전했다.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제도는 진화했다. 그러나 시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근로자를 옥죄기 시작했다. 환경 변화, 근무 제도, 고객 만족, 서비스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더 정교하게 근로자를 관리하고 통제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일하는 플랫폼 근로자는 시간이나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고 여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누군가가 나를 찾을 때까지 호출을 기다려야 한다. 평점이 깎이지 않도록 눈치를 봐야 한다. 낮은 응답률은 생계의 위협이 되기도 한다. 언제든 일할 수 있다는 말은 언제나 대기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는 일하는 장소의 경계를 허물었다. 그리고 동시에 노동과 휴식의 구분도 무너뜨렸다. 출퇴근은 사라졌지만, 연결은 끊기질 않는다. 근무 시간의 자율성은 확보했지만, 언제든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고객 만족이라는 목표 아래 펼쳐지는 서비스 경쟁은 결국 속도와 편의 중심의 사고로 흐른다. 그 과정에서 근로자의 권리는 고려하지 않는다. 택배 근로자는 주말과 새벽을 가리지 않고 배송에 나선다. 콜센터 근로자는 친절 점수에 따라 계약 연장의 여부가 결정된다. 무례한 응대에도 웃어야 한다. 서비스는 진화했을지 몰라도, 그 무게는 오롯이 근로자의 몫이다.

진화한 것은 시스템인가, 착취의 방식인가.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이미 정해진 구조와 흐름에 순응하는 몇 가지 방법을 줬을 뿐이다. 그 선택을 좌우하는 기준은 매출과 효율이다. 고객을 위한 진화라는 명분 속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불안정해진다.

근로자의 날이다. 많은 이의 희생을 기반으로 우리는 그간 힘들게 노동 환경을 바꿔왔다. 이유는 분명하다. 속도와 편리함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을 위해서다. 노동의 기준에 사람을 두지 않으면, 그 자리는 숫자가 채우게 된다. 근로자의 존엄과 권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그 진화는 온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민수미 기자
min@kukinews.com
민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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