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한 20대 빈곤층, 부모와 ‘생계급여’ 따로 받는 실험한다 

독립한 20대 빈곤층, 부모와 ‘생계급여’ 따로 받는 실험한다 

국무조정실, ‘정부 청년 정책 추진 방향’ 발표 
생계급여 분리지급·위기 청년 발굴, 4개 지자체서 6개월간 모의적용
“청년 빈곤 사각지대 해소 기대”

기사승인 2025-09-23 06:00:23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을 독립 가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은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사진=박효상 기자

# 부모의 알코올중독이 싫어 독립한 20대 김규빈(가명)씨는 분가 후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30세 미만 청년은 부모와 떨어져 살더라도 독립가구로 인정받지 못해 모든 가구원의 급여가 가구주인 부모에게 지급되고 있다. 부모가 생활비를 송금하지 않으면 따로 사는 자녀가 생활고를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규빈씨도 결국 부모가 급여를 모두 술값으로 지출하고, 생활비를 송금해주지 않아 빈곤 위기에 놓였다.

# 부모와의 종교 갈등으로 집을 떠난 20대 이지수(가명)씨는 갑작스러운 암 수술 후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신청하려 알아봤지만, 취업·결혼을 하지 않은 20대 청년은 부모와 따로 살더라도 부모와 동일 가구로 묶인다. 부모와의 단절을 증명하면 개별가구로 인정받을 수 있으나 서류상 인정되지 않아, 수급을 받을 수 없게 됐다. 결국 지수씨는 노숙자 쉼터를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빈곤 위기에 처한 20대 청년에게 생계급여를 분리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부모와 동일 가구로 묶여 복지 지원 사각지대에 놓인 청년들의 자립 기반을 지원하기 위한 조치다. 또한 비수급 가구 출신이지만, 가정폭력 등으로 부모와 연을 끊어 빈곤을 겪는 청년도 적극 발굴할 방침이다. 

국무조정실은 22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국민주권 정부 청년 정책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기초생활수급자 부모와 따로 사는 19~29세 독립 청년에게 생계급여를 분리 지급하는 방안을 모의적용할 방침이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모의적용을 통해 적정 보장 범위·수준과 가구 분리 시 파급효과 등을 평가한 뒤 보완해 본 제도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는 가구 단위로 지급되며, 30세 미만 자녀는 부모와 따로 살더라도 동일 가구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20대 청년이 독립가구로 인정받기 위해선 결혼을 하거나 일정 소득(올해 기준 118만5000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 그러나 지수씨처럼 건강상의 문제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20대 청년은 가족관계가 단절됐다는 점을 증명하면 된다는 예외 규정이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 일부 청년들의 경우, 암수범죄 특성상 서류 형태로 남기기 어려워 독립가구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적다. 또한 지차제 담당 공무원의 판단에 따라 인정 여부가 달라지는 등 지역마다 해석이 다르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래픽=윤기만 디자이너

이에 정부는 이번 모의적용을 통해 개선안을 마련했다. 모의적용이 시행되면 부모와 다른 곳에 거주하는 20대 자녀는 신청을 통해 급여를 직접 받을 수 있다. 가령 부모는 부산, 자녀는 서울에 거주할 경우 기존에는 부모에게만 지급됐던 약 160만원의 급여를 나눠서 받을 수 있다. 부모는 2인 가구 기준으로 약 125만원, 자녀는 1인 가구 기준 약 76만원을 각각 지급 받는다. 다만 이는 부모와 자녀 모두 소득·재산이 없는 경우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다.

대상 지역은 공모를 거쳐 선정된 인천 계양구, 대구 달서구, 강원 철원군, 전남 해남군 총 4곳이다. 자녀가 아닌 부모의 주소지가 기준이 된다.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모의적용이라 부모 주소지를 근거로 분리지급을 실시하게 됐다”며 “부모가 부산에서 산다면, 부산시에서 부모와 자녀의 생계급여를 분리 지급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4개 지역 선정 과정에 대해서는 ”대도시나 농·어촌만 하면 효과를 검증하기 어려워 적절하게 배분하려 노력했다”면서 “청년 관련 협력 기관과의 관계 등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지수씨처럼 비수급 가구 출신이지만, 부모와의 단절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 방법을 강구할 계획이다. 이 관계자는 “가정폭력 등으로 집을 떠난 청년들이 불합리한 기준 때문에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고쳐보려는 의지가 있다”면서 “현재도 소득 기준만 맞추면 세대분리가 가능해 장학금을 받는 데 유리하게 쓰는 등 기준에 균형이 맞지 않아 개선하려 한다. 부작용 우려에 대해선 해소할 수 있도록 틀을 짜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이번 모의적용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강미선 282북스 대표는 “현재도 20대 청년들이 가족관계 단절을 증명하기 위한 서류를 제출하려고 하면, 구청 공무원이 해당 특례조항의 존재에 대해 모르는 경우가 존재한다”면서 “하루 빨리 사각지대가 해소돼 보완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282북스는 탈가정 청년들의 모임 ‘궤도이탈’ 등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스란 복지부 제1차관은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하고 생계의 어려움을 혼자 감당하는 청년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며 “이번 모의적용을 통해 지자체 현장에서 청년 가구 분리 방안을 적용해 보고 그 결과를 통해 청년 빈곤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실효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관련 법안 (발의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했던 서 의원은 5년 전 복지부에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권고한 바 있다. 

앞서 쿠키뉴스는 지난해 11월 9편에 걸쳐 ‘이상한 나라의 세대분리법’ 시리즈 기획 보도를 통해 ‘30세 이상’만 가능한 세대분리 기준이 일부 청년들을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어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빈곤 상태여도 연령 기준에 막혀 기초생활보장 신청조차 할 수 없는 ‘독립제약청년’들의 현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독립제약청년이라는 언표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의 동의를 구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세대분리 기준에 대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전해왔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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