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부부 두 번 울리는 치료제 품절 문제…“공급 안정화 필요”

난임 부부 두 번 울리는 치료제 품절 문제…“공급 안정화 필요”

지난해 난임 치료제 27개 중 10개 공급 중단·부족
“고령 등 예후 좋지 않은 난임 환자 비율 매우 높아”
까다로운 제조 공정 대비 낮은 약가 발목
“저출생 문제 해결하려는 국가적 노력에 걸림돌”

기사승인 2025-09-22 06:00:05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정부가 난임 부부 지원 정책을 강화하며 저출산 문제 해소에 나서고 있지만, 정작 치료 현장에서는 난임 치료제가 반복적인 품절 사태를 겪으며 혼선을 빚고 있다. 고령 등 예후가 좋지 않은 난임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안정적인 치료제 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임신유지호르몬(프로게스테론)과 더불어 난임 치료제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난포자극호르몬 제품 중 일부가 반복적으로 품절 문제를 겪고 있다. 작년에만 전체 제품 가운데 약 3분의 1(27개 중 10개)이 공급 중단·부족 이슈가 있었다. 난임은 피임을 하지 않은 부부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가진 지 1년(여성 만 35세 이상은 6개월)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공급 중단·부족 의약품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한국머크바이오파마 ‘고날에프주75IU(5.5㎍)’(성분명 폴리트로핀알파, 유전자 재조합)를 비롯한 고날-에프펜(300/450/900IU주) 4종이 공급 중단·부족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고날에프는 기존 배란유도제인 ‘클로미펜’으로 치료되지 않은 여성의 무배란증과 보조생식 실시 중 다수의 난포를 성숙시키기 위한 난소과자극 요법 치료제로 사용된다. 

폴리트로핀알파 시밀러 제품인 유영제약의 ‘벰폴라프리필드펜’도 지난해 5월 공급 중단된 바 있다. 올해는 지난 7월 한국페링제약의 난임 치료제 ‘레코벨프리필드펜’(폴리트로핀델타)이 공급 부족을 겪었다.

“특정 약물 처방 제한, 시술 결과에 악영향”

난포자극호르몬제는 성분이 비슷하기 때문에 치료 현장에선 난임 치료제의 교차 사용이 빈번한 편이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난임 치료제로는 고날에프, 벰폴라, 레코벨을 포함해 △한국오가논 ‘퓨레곤펜주’(폴리트로핀베타) △LG화학 ‘폴리트롭주’(폴리트로핀) △동아ST ‘고나도핀NF 주사액’(재조합 인 난포자극호르몬, rhFSH) △한국머크 ‘퍼고베리스’(폴리트로핀알파) 등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성분이 비슷하더라도 생물학적 동등성이 약효 동등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뿐더러, 약효가 동등하더라도 제형별 차이가 있을 수 있어 한 약제가 다른 것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는 형국이다.

주창우 마리아병원 부원장은 “고날에프, 퓨레곤 등 1군 약제들 중 1~2개가 없거나 퍼고베리스 등 2군 약제 중 한 가지가 없다고 해서 진료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국내에 고령, 약물 저반응군 등 예후가 좋지 않은 난임 환자 비율이 매우 높다보니 시험관시술(체외수정) 다회 경험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중 특정 약물에 대한 반응이 유달리 탁월하거나 좋지 않은 환자군이 소수 있다”면서 “이런 환자들에겐 특정 약물에 대한 처방이 제한되는 것이 시술 결과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난임 치료제 공급 부족 문제는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나라에서 저출산 문제로 난임 지원 확대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어 치료제 수요는 증가할 전망이다. 중국은 2023년부터 저출산 대응 차원에서 베이징 등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체외수정에 대한 공공의료보험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또 미국은 기존 주별로 자체 난임 정책을 운영하던 것에서 지난 2월 연방 차원의 체외수정 접근성 확대 행정명령을 발표하며 지원을 넓혀가고 있다.

국내의 경우 결혼과 출산 연령이 높아지며 35세 이상 고령 산모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23년 평균 초혼 연령은 남성 34세, 여성 31.5세로 첫 아이 출산 연령이 평균 33.6세다. ‘40대 출산’은 더 이상 일부 임산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40대 초반 여성의 출산율(인구 1000명당 출생아 수)은 7.9명으로, 20대 초반 출산율(3.8명)의 두 배가 넘었다. 초혼 연령이 35세 이상인 기혼 여성 3명 중 1명은 난임을 경험한다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있다.

난임 시술 건수도 급격히 늘고 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난임 시술 환자와 시술 건수가 최근 2년 새 3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환자 수는 지난 2022년 14만2572명에서 2024년 16만1083명으로 1만8511명 늘었다. 같은 기간 난임 시술 건수는 20만1611건에서 25만9740건으로 5만8129건 증가했으며, 등록 부부 수는 7만7904쌍에서 9만373쌍으로 1만2469쌍 늘었다.

공급 부족에 수입 늘렸더니…‘약가 협상’ 대상

난임 치료제 공급 부족은 환자가 증가한 탓도 있지만, 제약사들이 까다로운 제조 공정 대비 낮은 약가로 인해 국내에 제품 공급을 꺼리는 배경도 있다. 난임 치료제 대부분은 생물의약품인 호르몬 제제로 제조 공정이 까다롭고 원가도 높아 수요 증가에 따른 생산 확대가 쉽지 않다.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KRPIA)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A제품의 가격이 영국 49만원, 프랑스 26만원, 독일 69만원, 스위스 40만원, 일본 26만원인데 반해 한국은 16만원으로 최저가 수준이다.

의약품 품절 문제로 해외 업체가 수입량을 확대해 공급 안정화에 기여해도 사용량 증가를 이유로 약가가 인하되는 사례도 있다. 정부는 신약의 약가 사후관리 강화를 위해 의약품 사용량 증가에 따라 약가를 조정하는 ‘사용량-약가 연동 협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업계 관계자는 “경쟁 제품의 장기 품절 상황 속에서도 공급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며 시장 수요에 맞춰 공급량을 확대해 치료 안정화에 기여한 결과가 약가 인하로 이어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며 “향후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 경우 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의약품 수급 확대에 나설 유인이 약화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난임 치료는 치료 흐름이 끊겨선 안 된다. 배란 유도를 위해 생리 2~3일째부터 배란 유도제를 1~2주간 꾸준히 투여해야 한다. 약품 공급이 중단되면 해당 회차의 시술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난임 치료제 공급 불안정 문제는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는 국가적 노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구축을 통해 중단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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