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67)

[인문학으로의 초대] 최금희의 그림 읽기(67)

빈센트와 클림트는 우키요에의 영향을 어떻게 받았는가?

기사승인 2025-05-06 15:01:46 업데이트 2025-05-06 15:25:03
빈센트 반 고흐, 꽃이 핀 자두 나무(우타가와 히로시게 목판화 모작), 1887, 캔버스에 유채, 73x54cm, 반 고흐 미술관 

빈센트는 히로시게의 <꽃이 핀 자두 나무>를 철저히 분석하여, 바둑판 무늬 종이에 정확히 모사했다. 히라가나와 가타가나의 테두리 장식은 순전히 그의 아이디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며 삐뚤빼뚤 낙관까지 따라 쓰는 그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마치 화투 그림을 보는 듯 전면의 굵은 자두나무 사이로 만발한 과수원이 보이는 대담한 구도와 강렬한 색감이 무척 인상적이다. 우끼요에는 빈센트는 물론 마네, 드가, 모네, 르누아르, 고갱, 로트렉, 클림트 등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던 화가들에게 색다르고 이국적인 그림이었다. 그렇기에 예술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화가뿐만 아니라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Claude Debussy)는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중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에 영감을 받았다. 빛과 폭풍에 의해 변하는 색채를 담은 교향시 <바다, 1905>을 작곡하였고, 표지 그림에도 이를 사용하였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 1760~1849),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19세기, 38X26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이는 가나가와(神奈川) 바닷가에서 높은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산을 그린 그림이다. 18세기만 하더라도 자연은 인간이 생활하는 터전일 뿐이었다. 그러나 호쿠사이는 자연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집채 만한 푸른 파도는 하얀 포말로 그 세기를 가늠할 수 있다. 솟구치는 높은 파도는 흡사 마귀의 손아귀나 갈고리처럼 돌변했다. 내 손에 한 번 잡히면 놓지 않겠다는 듯 거친 포효는 세 척의 거룻배를 당장 집어 삼킬 듯하다. 뱃전에 납작 엎드린 순박한 어부들은 두려움에 어찌할지 모르고 벌벌 떨고 있다. 그 사이로 저 멀리 눈 덮인 후지산은 고요하다.

힘을 분출하는 동적인 대파도와 정적인 후지산의 대비는 숨막히는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대자연의 숭고함을 표현한다. 70대의 호쿠사이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대담하고 신선한 구도를 잡았다.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지브리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 시절 89세까지 장수했던 호쿠사이는 몇 년간 바다에 나가 파도를 관찰한 끝에, 이 그림을 구상했다. 그는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며 ‘가교진(畵狂人)’이라 스스로 칭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1760~1849), 맑은 바람 맑은 아침, 붉은 후지, 1830년경~1832, 25.72cm, 위키피디아 

문학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피해갈 순 없었다. 프랑스에서 노벨문학상 다음으로 권위를 인정 받는 공쿠르 상을 제정한 공쿠르 형제는 1896년 호쿠사이에 대한 책을 출간하였다.

릴케의 시 <산 Der Berg> 역시 예술 창작의 지난한 과정을 호쿠사이를 모델로 쓴 작품이다.

서른여섯 번, 백 번이나 

화가는 그 산을 썼다 찢어 버렸다가

다시 온몸을 사른다. (서른여섯 번 그리고 백 번이나) 

그 가늠할 수 없는 화산에, 복되게 온갖 힘을 기울이는 동안

- 외로이 어렴풋이 떠오르는 형체가 그의 찬란함을 막지는 못했다: 

수 없이 모든 날들에서 떠올라 견줄 길 없는 밤들이 스스로 떨어져 내려, 

모두가 가까스로 모든 영상이 순간에 사라지며, 

형체가 형체로 바뀌어 관심을 버리고 멀리 아무 생각도 없이

현상처럼 돌연 깨달음이 와 모든 틈새로 떠오른다.  

<꽃이 핀 자두 나무> 원작자인 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는 우타가와 도요히로 밑에서 15세에 우키요에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서양과 전통화법을 결합하여 인물화를 주로 그렸다.

1830년 경부터는 풍경화가로 활동했으며, 도카이도(東海道)를 따라가며 에도에서 교토까지 53개 역참에 묵었다. 그때 스케치한 그림을 바탕으로 1832년에 발표한 <도카이도 53개 역참 東海道 五十三次>이 대단한 선풍을 일으켰다. 이후 이런 류의 작품집으로 가장 인기 있는 우키요에 작가가 되었다. 히로시게의 작품은 뛰어난 경치는 물론이고 나그네의 여정까지 섬세하게 묘사하여, 시간과 돈이 없어 여행을 하지 못하는 서민들의 대리만족을 시켜주었다. 

이 글을 쓰며 겸재 정선 전시회를 두 차례 다녀오게 되었다. 관람객들이 옆에서 금강산전경이 담긴 <신묘년풍악도첩>을 보며 금강산을 다녀온 것이나 진배없다는 말을 한다. 나는 전시회를 보는 내내 히로시게의 작품집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겸재는 금강산을 가지 못하는 이들과, 앞으로 금강산 유람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명소를 한자로 써넣고 경로도 잘 보여준다. 이렇게 여행지도 역할도 하는 겸재의 화첩은 사대부들이 갖고 싶은 최고의 보물이었다. 

이후 로스트제네레이션, 잃어버린 세대의 미국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가 쓴 극도로 절제되고 압축된 시들도 일본 단가 하이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여행 소설가 피에르 로티(Pierre Loti, 1850~1923)는 일본 여행을 한 뒤 소설 <국화부인, 1887>을 썼다. 이는 후일 존 롱(John Luther Long)의 단편소설 <나비 부인>과 함께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 부인>의 원작이 되었다. 아를에서 공동 생활을 하던 반 고흐와 고갱은 피에르 로티의 소설을 읽었으며, 고갱이 후일 남태평양으로 떠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우타가와 쿠니요시(1798~1861), 무쓰 지방의 베레세, 모네박물관

반 고흐 미술관에는 빈센트와 테오의 477점의 우키요에가 소장되어 있다. 그중 다수는 국제적인 미술상 사무엘 빙이 수입했고, 11년마다 열리는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포니즘(Japonisme)’은 엄청난 열풍을 몰고 왔다. 루브르 박물관에서도 1892년 일본 미술을 정식 소장품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이미 네덜란드에서는 17세기부터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지리학자>, <천문학자>가 입은 옷으로 자포니즘은 등장하고 있었다.

빈센트는 네덜란드 누에넨에서 주일 예배에 참석하지 않아 목사인 아버지와 다투고, 가난한 자유를 찾아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으로 떠났다. 거기서 방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일본 판화 몇 점을 구했으며, 파리에서 싼 값에 판화를 구입할 수 있는 경로를 알게 된 후에는 적극적으로 수집하게 되었다. 

빈센트 반 고흐, 레생트 근처의 바다 풍경- 생트마리드라메르, 1888년 6월, 캔버스에 유채, 반 고흐 미술관 

헤이그 시절 빈센트는 “언젠가는 내가 모래, 바다, 하늘 같은 것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는 바램을 드러냈다. 아를에서 빈센트의 회화 기법은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대중에게 보여줄 그림 50점을 그리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리곤 집시들의 행렬을 보기 위해 지중해의 작은 마을 생트마리드라메르로 갔다. 전 유럽의 집시들은 매년 5월이면 수호성인 성 사라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빈센트는 굵은 붓과 팔레트 나이프를 사용하여 두터운 질감(마띠에르)을 주고, ‘Vincent’라 사인을 남겼다. 그런데 왜 빨간색으로 서명을 했을까? 자신의 이름을눈에 잘 띄게 하려고 빨간색으로 썼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빈센트는 이 그림을 완성하고 이젤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바라보았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푸른 톤인 그림의 대조를 생각해 빨간색으로 사인을 했다.  

빈센트는 시시각각 변하는 지중해의 바다를 아주 좋아했다. 테오에게 “지중해 바다의 빛깔은 초록인가 하면 보라색 같고, 파란색인가 하면 분홍이나 회색빛으로 쉴 새 없이 변하고 있어서 마치 고등어 빛깔 같구나!”라 감탄을 연발한다. 파란색과 흰색, 빨간색과 노란색의 대비로 거친 파도의 일렁임과 포말을 묘사했다. 노를 젖는 사공이 탄 돛단배와 수평선 가까이 멀어져 가는 배도 그렸다. 빈센트는 야외에서 드로잉을 하고 어떤 색을 칠할 것인지 메모를 했다.  

구스타프 클림트, 큰 포플러 나무 II (다가오는 폭풍), 1902~3, 100.8x100.8cm, 레오폴드 미술관(훨씬 밝고 컬러플한데, 조명 때문에 몹시 어둡게 나왔다) 

클림트는 1900년대에 풍경화를 그리며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장식적이며 상징적인 화풍으로 대중적인 인기도 누렸다. 이곳은 주로 여름 휴가를 보내던 아티제 호수의 작은 교회다. 우뚝 솟은 커다란 포플러는 무수히 작은 점을 찍어 다양한 색을 반짝이도록 표현했다. 미술 평론가 루드비히 헤베시는 나뭇잎이 마치 ‘송어 비늘’ 같다고 평했다.  

이 그림을 감상하며 빈센트가 지중해 바다가 ’고등어 빛깔 같다’라고 말한 게 떠올랐다. 나무 뒤 먹구름이 몰려오는 배경 표현도 빈센트의 일렁이는 감정적인 터치가 연상되었다. 클림트는 빈센트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단순하게 묘사한다기보다 감정과 상징으로 그렸다. 

빈센트는 “자연 속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일본 화가와 같은 존재로 늘 여기에서 살아갈 것이다.”라고 아를에서 말한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진 않았다.  


최금희 작가는 미술에 대한 열정으로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을 답사하며 수집한 방대한 자료와 직접 촬영한 사진을 가지고 미술 사조, 동료 화가, 사랑 등 숨겨진 이야기를 문학, 영화, 역사, 음악을 바탕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하나투어의 '명화로 찾아가는 세계미술관 예술기행'.

한편, 하나투어에서는 오는 8월 11일부터 23일까지 11박 13일 일정으로 '최금희 도슨토의 해설과 함께하는 명화로 찾아가는 세계미술관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 예술기행 13일'을 상품으로 내놓았다. 전 세계에서 고흐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을 시작으로 프란스 할스 미술관, 보이만스 판 뵈닝겐 미술관, 벨기에 왕립미술관, 마그리트 미술관, 파리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고댕 등을 찾는다.



홍석원 기자
001hong@kukinews.com
홍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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