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 팀을 떠나기로 결정했습니다.”
짧고 담담한 이 한마디가 축구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손흥민(33)은 지난 10년간 몸담았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홋스퍼와 이별을 이렇게 알렸다.
손흥민과 토트넘의 인연은 2015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 레버쿠젠에서 가능성을 입증한 그는 당시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이적료(3000만 유로)로 북런던에 입성했다. 첫 시즌에는 언어 장벽과 적응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손흥민은 특유의 성실함과 끈기로 비판을 이겨냈다. 출전 기회를 기다리며 조용히 땀을 흘렸고, 결국 팀 내 핵심으로 도약했다.
이후 손흥민은 토트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0시즌 동안 공식전 454경기에서 173골 101도움을 기록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EPL 득점왕(2021~2022시즌)에 오르며 역사를 새로 썼고, EPL 통산 100골을 돌파한 유일한 아시아 선수가 됐다. 그가 가는 길이 곧 아시아의 새 역사였다.
기록만으로도 위대한 여정이지만, 손흥민의 진짜 가치는 숫자 너머에 있다. 손흥민은 말 그대로 ‘토트넘의 얼굴’이었다. 경기장 안팎에서 늘 성실했고, 몸을 아끼지 않았다. 2023년부터는 주장 완장을 찼다. 동양 선수가 EPL에서, 그것도 빅클럽에서 주장을 맡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영어도 못 하던 23세 어린아이가 남자가 돼서 떠난다”는 그의 말처럼, 손흥민은 온갖 차별과 편견을 딛고 ‘캡틴 손’으로 성장했다.
우승으로 끝냈다는 점도 의미를 더한다. 손흥민과 토트넘은 2019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2021년 리그컵(EFL컵) 결승 등 몇 차례 우승 기회를 잡았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손흥민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팀의 간판이자 리더로서 자리를 지켰고, 해리 케인이 떠난 이후에도 중심을 잡으며 흔들리는 팀을 이끌었다.
묵묵히 노력한 결과일까. 손흥민은 마지막 시즌에 결국 그토록 원하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24~2025시즌 UEFA 유로파리그에서 토트넘의 우승을 이끌며 41년 만에 구단에 유럽 클럽대항전 트로피를 안겼다. 개인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동시에 팀에도 영광을 남겼다. 마침내 ‘무관의 제왕’이라는 오명을 벗고 당당히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제 손흥민은 북런던을 떠난다. 단순한 이적이 아니다. 한 시대의 마침표이자, 새로운 서사의 서막이다. 팀에 트로피를 선물한 손흥민은 최정상에서 이별을 고했다. 아쉽지만 그의 선택을 이해한다. 토트넘에 모든 걸 바친 손흥민 아닌가. 커리어의 황혼에 접어든 손흥민이 새 무대를 꿈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손흥민의 다음 행선지는 미국 프로축구(MLS) LAFC다. 거액의 제안과 더불어 경기력 유지를 위한 안정된 환경, 그리고 2026 북중미 월드컵 준비까지. 여러 측면에서 손흥민에게 최적의 선택지로 평가된다.
10년. 숫자로는 간단하지만, 그 안엔 고통과 인내, 열정과 사랑이 녹아 있다. 손흥민은 토트넘에서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마침내 아름다운 이별을 맞이했다. 이제 그는 새로운 무대를 향해 나아간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앞에서 여전히 손흥민을 믿고 또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