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판 돈으로 게임 사업하는 사우디, 지스타 부스 감소하는 한국 [데스크 창]

석유 판 돈으로 게임 사업하는 사우디, 지스타 부스 감소하는 한국 [데스크 창]

기사승인 2025-10-02 15:43:49
이영재 문화스포츠부장
지난해 ‘e스포츠 월드컵’을 세계 최초로 개최하며 전 세계 게임업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렉트로닉 아츠(EA)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EA는 세계적인 축구 게임 ‘피파’ 시리즈를 만든 회사다. 피파 시리즈 외에도 EA는 ‘배틀필드’, ‘심즈’ 등 글로벌 흥행 게임의 지식재산권(IP)을 가진 전도유망한 게임 회사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지난 9월29일 실버 레이크, 어피니티 파트너스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550억달러(한화 약 77조원)를 투입해 EA를 차입매수(LBO)했다. PIF가 가장 큰 금액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어피티니 파트너스의 창업자인 재러드 쿠슈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재러드 쿠슈너 어피니티 CEO는 EA 인수 직후 “어릴 때부터 EA 게임을 즐겼고 지금은 자녀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면서 “앞으로 무척 기대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는 게임업계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는 한국과 대비된다. 오는 11월 부산에서 개막하는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 2025’는 총 3010부스 규모로 열린다. 지난해 3359부스 대비 약 10% 감소했다. 올해 8월 독일에서 열린 ‘게임스컴’, 일본이 지난 9월 개최한 ‘도쿄게임쇼’가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것과 대조적이다.

정부 지원도 뒷전이다. 기재부가 지난 7월 발표한 ‘2025 세제개편안’에는 웹툰 제작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항목이 신설됐다. 영상 콘텐츠에 대한 세액공제 또한 2028년까지 연장됐다. 반면 제작비가 가장 많이 드는 게임은 최종안에서 빠지면서 제외됐다. 2023년 국내 게임산업 수출액은 11조6092억원으로 콘텐츠 전체 수출액(18조6027억원)의 약 63%에 육박한다. 이는 드라마와 영화, 웹툰 수출액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높은 수치다. 이렇다 할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게임 제작비는 시나브로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평균 제작비 53억원에서 2023년에는 59억원으로 약 6억원 증가했다. 게임업계가 이른바 ‘NK’로 대표되는 넥슨, 크래프톤을 제외하고 역성장 기조로 돌아선 상황 역시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서 해법을 찾지 못한 e스포츠 게임단은 사우디를 ‘기회의 땅’으로 바라본다. e스포츠 월드컵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최하는 게임 대회로 지난해부터 매년 리야드에서 열린다. 올해는 규모를 더욱 키워 총상금만 7000만달러(약 981억3300만원)에 달한다. 25개 종목(24개 게임)에서 전 세계 200개팀, 2000여명이 출전한다. 국내 최고 e스포츠 종목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비롯해 배틀그라운드, 발로란트, 스타크래프트2, 철권8, 스트리트 파이트6 등 인기 게임에서 최강자를 가린다.

e스포츠 게임단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페이커’ 이상혁 선수가 소속된 e스포츠 최고 인기 구단 T1은 2023년 약 1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또 다른 인기 구단인 디플러스 기아는 영업손실 62억원, 농심 레드포스는 영업손실 37억원으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자연스레 큰 상금이 걸린 e스포츠 월드컵이 돌파구가 됐다. e스포츠 월드컵의 부문 중 하나인 ‘클럽 챔피언십’은 여러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을 선정해 시상하는데, 우승 상금이 무려 700만달러(약 98억1610만원)다.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에서 매년 열리는 e스포츠 월드컵 성과에 따라 국내 e스포츠 게임단 한 해 농사가 좌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하려는 움직임 또한 여전하다. 지난 2019년 WHO(세계보건기구)는 ‘게임이용장애’를 국제질병분류(ICD-11)에 등재했다. KCD(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에도 이를 반영하려는 시도가 보건복지부와 정신건강의학계 주도로 진행됐다. 이는 지난 2011년 11월20일부터 2021년 12월31일까지 시행된 바 있는 ‘셧다운제’를 연상케 한다. 셧다운제는 청소년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온라인 PC 게임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강제로 제한한 제도로, 국제 사회에서 온갖 조롱을 당하다 10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게임의 질병 등재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20세기에 문화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 영화의 출현이라면 21세기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최 장관은 “게임은 종합예술의 한 분야이고 문화예술의 축을 이끌어나갈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질병으로 생각하고 접근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반면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WHO 결정을 준용해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를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의료계에서는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할 경우, 청소년 환자 수요가 높아질 거라는 기대감을 갖고 있다. 정신과, 소아청소년과 등이 WHO 결정을 지지하면서 국내 도입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이처럼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국내 게임업계 ‘맏형’ 넥슨이 게임과 문화를 연결하는 시도를 거듭하며 주목받고 있다. 넥슨은 앞서 언급한 EA 대표작 ‘피파 온라인(FC 온라인)’ 오프라인 행사인 ‘아이콘 매치’를 지난해부터 2년 연속 개최했다. 올해는 박지성, 앙리, 드로그바 등 기존 멤버에 제라드, 호나우지뉴 등이 추가된 초호화 멤버가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출동해 한국 팬들과 호흡했다. 올해 아이콘 매치에 모습을 드러낸 선수들의 전성기 시절 몸값은 1조4000억원을 호가한다. 업계에서는 올해 아이콘 매치에서 선수 섭외 비용만 100억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보고 있다.

아이콘 매치는 게임을 넘어선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PC방 점유율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발로란트, 배틀그라운드 등 e스포츠 월드컵 종목들에 이어 4위를 마크하고 있는 FC온라인은 국내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다. 올해는 레전드 선수들이 아이콘 매치에서 선보인 모습을 게임 능력치에 반영하는 색다른 시도도 진행됐다. 아이콘 매치는 게임을 오프라인으로 구현한 문화‧스포츠 축제의 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틀 동안 열린 아이콘 매치는 10만 관중이 몰리면서 전석 매진됐고, 현장을 찾은 팬들은 내년 아이콘 매치에는 어떤 축구 스타가 나올지 벌써 궁금해 한다.

석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다방면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국가 장기 프로젝트 ‘사우디 비전 2030’에서 게임과 e스포츠 진흥 전략을 앞세웠다.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전 세계 게임 커뮤니티 염원을 실현하겠다”면서 “흥미진진하고 독특한 엔터테인먼트 기회를 통해 2030년까지 사우디아라비아를 게임과 e스포츠 분야의 궁극적인 글로벌 허브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e스포츠 월드컵이 개최 2년 만에 전 세계 게임단의 목표가 된 것만 봐도 절대 허풍이 아니다.

원조 게임 강국 한국의 향후 정책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성남시장할 때, 국내 게임업체 매출 기준 60%가 분당에 밀집했다”며 “성남시 입장에서는 게임산업이 굉장히 중요하다. 관심을 갖고 지원을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고 짚은 바 있다. 이어 “당시 게임을 마약, 알콜 등과 함께 4대 중독물로 봤다”며 “게임에 대한 탄압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당시 전 세계에서 국내 게임이 압도적인 선두그룹이었는데 지금은 중국에 밀려버리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만화에 대한 시선도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문화산업의 근간이 됐다”고 말한 이 대통령은 “게임도 비슷하다. 훌륭하게 성장할 e스포츠 선수들도 있다. 앞으로 게임산업과 이용자들이 더 희망적인 환경에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가겠다”고 공약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산적한 게임업계 현안들을 이번 정부에서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처리해나갈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이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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