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은 보이지 않고 ‘국민’만 보였다. 공식 선거운동에 돌입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신의 이름 석 자 대신 ‘국민’이라는 두 글자를 전면에 내세우며 메시지를 정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당시 “국회로 와달라”며 국민의 직접 행동을 호소했던 흐름과 맞닿아 있다. 통합과 실용, 헌정 질서 회복이라는 일관된 기조를 통해, 위기 돌파의 해답을 진영이 아닌 ‘국민 통합’에서 찾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지난 12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첫 공식 유세에서 “지난 3년 내내 거듭된 퇴행 속에 국민의 삶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며 “이제는 진영 논리는 끝났다.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대립을 넘어 실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연설의 핵심은 단어 선택에 있다. 이 후보는 ‘국민’을 51차례, ‘우리’를 22차례 언급하며 청중과의 심리적 거리를 좁혔다. ‘대한민국’과 ‘나라’는 각각 20번씩, ‘위기’는 14번, ‘내란’ 12번, ‘민주’ 8번, ‘통합’ 5번 등도 주요 키워드로 반복됐다. 반면 ‘이재명’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다.
이 후보가 연설에서 밝힌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은 국민이 하는 것”,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메시지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선다.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국민을 주권자로 위치 짓고 자신은 ‘국민의 명령을 따르는 도구’ 혹은 ‘머슴’으로 남겠다는 서사 전략이다.
이 같은 기조는 이미 지난해 12월 3일 계엄 사태 당시부터 본격화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이 후보는 국회로 향하며 “국민 여러분, 국회를 지켜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그는 “복종의 대상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국군 장병에게도 “여러분의 총칼은 국민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력의 정당성을 헌법이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확인받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후에도 같은 메시지는 반복됐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 14일, 국회 앞에서 열린 촛불대회에서 이 후보는 “이 모든 것은 국민 여러분이 해낸 것”이라며 “다시 한 번 빛의 혁명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내란 사태에 대한 대국민 성명에서도 “국민과 역사의 명령에 따라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감성 호소를 넘어, 정치적 정당성을 국민으로부터 획득하겠다는 전략적 접근으로 풀이된다. 윤 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가운데, ‘국민’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자신은 그 반대편에 서 있음을 강조하는 메시지다.
일부 정치인이 ‘내가 막아냈다’는 주체적 서사를 강조한 것과도 결이 다르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 나섰던 한동훈 전 대표는 계엄 선포 직후 “제가 먼저 국회에 들어갔다”며 자신의 결단과 역할을 부각했다. 이에 반해 이 후보는 자신이 아니라 ‘국민’을 주체로 삼고 자신은 그 뜻을 실천하는 수행자에 머무는 정체성을 강조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13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진영 대결과 과잉 주체의 정치에 피로감을 느끼는 유권자들에게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정적 메시지를 반복함으로써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정치의 중심을 국민에게 되돌리겠다는 의지”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선대위 관계자도 “이 후보는 20대 대선 당시에도 국민이 원하고 필요하면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기조를 일관되게 보여왔다”며 “모든 판단의 기준은 국민의 뜻”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