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제가 마약의 입문 경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17일 성명을 통해 “ADHD 약물은 치료를 위한 도구이다. 마약의 문이 아니다”라며 “공인의 무분별한 발언은 환자의 치료 기회를 박탈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경기도지사를 지낸 남경필 마약예방치유단체 ‘은구’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ADHD 약에 중독돼 결국 마약까지 가게 된다”고 언급한 데 대한 입장이다.
의사회는 “의사의 처방에 따라 치료제를 복용한 ADHD 환자들이 향후 불법 마약, 알코올, 담배 등에 더 많이 노출된다는 근거는 없다”며 “적절한 치료가 약물 남용 위험을 낮추는 보호 효과를 갖는다는 보고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UCLA) 연구진이 2500명 이상의 ADHD 아동을 수년간 추적한 결과, 치료제 복용 여부와 마약류·알코올 사용 위험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 국가 코호트 연구에서는 ADHD 환자 중 치료제를 복용한 집단이 복용하지 않은 집단보다 물질남용 위험이 31% 낮았고, 복용 기간이 길수록 이 같은 보호 효과가 강해졌다는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의사회는 “ADHD 자체가 충동성, 위험 행동, 환경적 취약성을 동반하는 질환으로 치료받지 않으면 물질 남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며 “위험의 본질은 약물 자체가 아니라 치료받지 않은 ADHD에 있다”고 짚었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인사의 근거 없는 발언은 환자와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고도 했다. ADHD 약물에 대한 오해와 낙인은 치료 회피와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환자의 건강과 삶의 질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사회는 “공인의 발언은 과학적 사실과 의료 윤리에 기반해야 한다”며 “누군가의 첫 치료 기회를 막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ADHD 치료제에 대한 불필요한 공포와 낙인을 걷어내고 환자들이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정확한 정보는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고 우리 사회의 정신건강을 지탱하는 첫걸음”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