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명의 사상자를 낸 세종~안성고속도로 붕괴 사고가 교량공사 중 상판(거더) 설치 후 전도방지시설(스크류잭)을 임의로 제거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공사의 귀책사유이며 국토교통부는 영업정지 등 엄중한 처분을 검토 중이다.
19일 국토부는 세종~안성고속도로 붕괴사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 2월28일 서울세종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 9공구 천용천교 건설 현장에서 교각에 올려놓았던 상판 4개가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사고로 4명이 숨졌으며 6명이 다쳤다. 해당 현장의 발주처는 한국도로공사이며 시공은 현대엔지니어링이 맡았다.
건설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작업 편의를 위해 전도방지시설을 임의 해체한 것이 결정적 사고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스크류잭은 거더 설치 시 하중을 임시로 지지하기 위한 조절 장치다. 교각과 교각 사이를 잇는 콘크리트 빔인 거더를 설치할 때 임시 받침대를 세워 고정하는데, 이 때 높이를 미세하게 조절하고 하중을 안전하게 지지하기 위해 스크류잭이 사용된다.
스크류잭은 안전을 위해 거더가 안정화된 이후에 제거돼야 한다. 그러나 작업자는 사조위 청문 절차에서 스크류잭이 다른 현장에 투입돼야 한다는 상급자의 지시를 받고 임의로 이를 해체했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120개의 스크류잭 중 60%에 해당하는 72개가 임의 제거됐다. 스크류잭 4개는 전도방지 와이어도 해체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거더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런처가 후방 이동하며 사고를 유발했다. 사고 현장에 투입된 런처는 전방 이동 작업용으로만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인증을 받아 후방 이동 시 사용이 불가하다. 작업자들은 이 런처를 해체한 이후에 이동 시켜 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이러한 과정 없이 런처를 그대로 후방 이동시켰다. 해당 공사 구간은 터널 입구가 존재해 런처를 해체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조위가 붕괴 시나리오별 구조 해석한 결과, 런처 후방이동 등 동일한 조건에서도 스크류잭이 제거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거더가 붕괴되지 않았다. 스크류잭 제거가 붕괴의 결정적 원인인 셈이다.
시공 과정에서도 미흡한 부분이 드러났다. 하도급사가 시공계획에 제시한 런처 운전자와 작업 일지의 운전자가 달랐다. 작업 일지상의 운전자는 다른 크레인 조종을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 결국 이러한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지지대와 거더 간 들뜸이 발생하고 거더의 비틀림으로 이어지면서 이번 붕괴사고가 발생했다.

관리‧감독의 총체적 부실 포착
또한, 관리‧감독의 총체적 부실도 나타났다. 임시 시설의 검측 주체인 시공사 현대엔지니어링은 하도급사인 장헌산업의 스크류잭 제거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또 장헌산업은 런처의 전방 이동 작업에 대해서만 안전 인증을 받았으나 후방 이동 작업을 안전관리계획서에 포함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
오홍섭 사조위원장은 “거더가 설치된 이후에 스크류잭이 설치돼 있는지 육안상으로 확인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면서도 “그러나 CCTV가 있었고 영상에서 스크류잭이 제거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현대엔지니어링이 이 부분에 대해 관리가 부실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가설 구조물에 대한 구조적 안전성 확인도 미흡했다. 가설 구조물은 제3자가 검증해야 하지만 사고 발생 현장에서는 하도급사인 장헌산업 소속 기술사가 런처를 검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조위는 각 구조물에 대한 보수 혹은 재시공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사조위는 현장에 남아 있는 구조물에 대한 안전성 확인 결과 △교각(P4)의 기둥과 기초 접합부 손상 △교대(A1)의 콘크리트 압축강도(평균 29.6MPa)가 설계기준(35MPa)의 84.5% 수준으로 시방서 기준(85%)에 다소 미달 △미 붕괴 거더에서 기준치(55mm) 이상의 횡만곡 발생(60~80mm) 등이 발견됐다고 덧붙였다.
재발방지대책으로는 △제도적 측면에서 전도방지시설 해체 시기에 대한 기준 마련, 발주청과 건설사업관리자의 관리·감독 의무 현실화 △설계 시공적 측면에서 거더 길이 증가에 따른 횡만곡 및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PSC) 거더의 솟음량 관리 강화 △건설장비 측면에서 런처 등 장비 선정의 적정성에 대한 관계 전문가 검토 강화 등을 제안했다.
오 위원장은 “사고조사 결과를 정리·보완하여 8월 중 국토교통부에 최종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라며 “다시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토교통부 등 관계기관의 조속한 제도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주택 수주’ 멈춘 현엔, 안전 관리 시스템 재점검
현대엔지니어링은 주우정 대표이사 명의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해당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신 고인들께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가족분들과 부상을 입으신 분들, 그 가족들께도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국토부 조사 결과를 면밀히 검토하고 제시된 의견과 권고 사항을 상세히 분석해 회사 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와 시스템에 적극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안전 관리 시스템을 근본부터 재점검해 실질적인 개선과 정비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내부 구성원과 외부 전문가의 고견을 충실히 경청해 점검과 개선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덧붙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4월 이후 신규 주택 사업 수주를 위한 활동을 멈춘 뒤 안전 문화 시스템 마련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해당 조사 결과가 나오며 업계에서는 현대엔지니어링의 처벌 수위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조사결과 시공사의 귀책 사유가 발견됐다”면서 “시공사 과실로 부실시공해 구조물이 붕괴했고 다수 사망자가 발생한 만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적용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행정청은 영업정지 여부를 검토 중이다. 김태병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사조위 조사 결과와 특별 점검 결과를 경찰, 관계 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에 즉시 통보할 것”이라며 “각 행정청은 소관 법령에 따라 벌점·과태료 부과, 영업정지 처분을 검토하는 등 엄중히 조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내년 말 개통 예정이었던 세종안성 고속도로는 발주청의 정밀조사를 통해 각 구조물에 대한 보수 또는 재시공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