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룰이란 본래 주식회사의 주주총회에서 감사 또는 감사위원을 선출할 때 3% 초과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제도다. 이 제도는 1962년 상법 제정 당시부터 시행되어왔다. 최근 상법 개정에 반영된 ‘3% 룰’은 기존 제도의 적용 범위를 바꾼 것이다. 종래 대규모 상장회사 주주총회에서 상근감사나 사내이사인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지분을 합산하도록 했던 것을, 이번에 사외이사인 감사위원 선출에 대해서까지 확대한 것이다.
3% 룰은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나라 고유의 제도다. 그런데 3% 룰이 어떤 의도에 따라, 무슨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인지는 널리 알려진 바 없다. 이에 오늘은 3% 룰의 탄생 과정에 대한 국회 내외의 기록을 정리해 공개하고자 한다.
상법 제정 과정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총독부의 조선민사령에 따라 일본의 상법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그리고 1948년 제정헌법 제100조에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라고 규정했다. 이 역시 일본 상법을 그대로 썼다(이것을 ‘의용상법’이라고 불렀다).
국회의 기록물에서 상법 제정 노력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무렵이다. 정부는 1960년 11월30일과 1961년 1월31일 두 차례에 걸쳐 국회에 상법안을 제출했다. 당시 국회법상 회기 중에 의결되지 못한 안건은 폐기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첫 법안이 회기 중 의결되지 못해 폐기된 후, 동일한 내용으로 두 번째 법안이 제출됐고 역시 동일한 이유로 폐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두 법안에 3% 룰은 없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재건최고회의는 스스로 입법기관이 되었다. 이에 내각수반은 1961년 9월 18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상법안을 보내며 심의, 의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법안은 약 4개월 동안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심의와 수정을 거쳐, 1962년 1월 19일 법률 제1000호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상법이 된다.
3% 룰의 등장
3% 룰이 처음 등장한 것은 국가재건최고회의 심의 과정에서다. 당초 내각수반의 상법안에는 3% 룰이 없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의 여러 분과위원회 중 하나인 법제사법위원회 주도로, 1961년 9월부터 12월까지 예비심의를 거쳐 원안에 대한 수정안이 마련됐다. 법제사법위원회는 1962년 1월12일 이 수정안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상정시켰고, 이 수정안이 그대로 입법됐다. 수정안은 총 189 페이지에 걸쳐 773개의 수정의견을 담고 있다. 3% 룰은 그중 390번째 수정의견에 나와 있다.
그렇다면 예비심의 과정에서 3% 룰에 관해 어떤 논의가 있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하기 어렵다. 국회 기록물 중에는 「상법안, 어음법안, 수표법안 예비심의 결과보고」라는 문서가 있다. 이 문서에 예비심의과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되어 있을 뿐이다(독자의 편의를 위해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한자를 한글로 옮겼다. 이하 같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제안 직후인 9월19일 상법심의소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는 법전의 중요성은 물론 방대한 양. 이론적 정밀성 등을 고려한 조치입니다. 위원으로는 박원선, 박영화, 차락훈, 정희철, 서돈각, 손주찬 교수와 조규대 서울고법 판사, 유민상 법사위 자문위원을 위촉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20일)부터 예비심의에 착수하였습니다.
소위원회는 예비심의 완료 날인 12월29일까지 회의를 총 49회 진행했습니다. 심의 과정에서는 관계 각계의 의견을 서면으로 청취했고, 12월21일에는 상법심의 공청회도 개최했습니다.”
이 문서의 내용대로, 당시 상법 제정을 앞두고 공청회와 서면 의견접수가 있었다. 그러나 공청회 안건, 그리고 전국 각지로부터 접수된 다양한 의견서 내용에 3% 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제안된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결국, 3% 룰이 어떤 논의를 거쳐 도입된 것인지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법 예비심의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기록
예비심의에 건국대학교, 경희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등 여러 대학의 법학교수들이 참여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이 상법 제정 이후 남긴 기록을 보면, 3% 룰을 만들 때 어떤 고려가 있었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서돈각, 손주찬 두 교수는 1962년 함께 「(축조)신상법해설」(법문사)을 출간했다. 여기에 “의용상법에서처럼 주주총회의 일반결의방법인 다수결원칙을 따르면 대주주의 뜻에 맞는 사람만 감사로 선출되게 된다. 이때 감사는 자기를 선임한 대주주와 그가 신임하는 이사의 뜻을 거역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감사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신(新)상법은 감사 선임 시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3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진 대주주는 그 초과하는 주식에 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것은 주주의 의결권에 관한 중대한 제한이 될 수 있으나, 감사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입법이다. 외국의 입법례에도 다수결 남용에 의한 부당한 선임에 대해 소수주주에 의한 이의신청권(독일 주식법 136조2항3항), 감사의 비례대표제[서전(註: 스웨덴) 1944년법] 등 감사선임의 공정성에 대한 고려를 볼 수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제273면).
또한 서돈각 교수는 1966년 다른 공저자(이범찬)와 함께 「상법예해(상)」(법통사)를 출간했다. 여기에 “이사를 선임한 대주주가 감사도 선임하는 경우 감독기능의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신상법은 종래의 경향을 고려해 소주주의 의사를 반영시켜 불편·공정한 감사의 선임을 하도록 특수한 선임방법을 창조해 냈다”라고 썼다(제351면).
예비심의의 또 다른 참여자인 정희철 교수는 1963년 「(축조)신상법시행법해설: 신구회사법 비교해설」(법문사)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이것은 대주주의 의사대로 감사가 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두어진 규정이다. 이것에 의하여 소수주주측에서 감사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장된다. 이 신법의 규정은 주식회사법으로서는 획기적인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손주찬 교수는 1964년 「신상법대요」(박영사)를 통해, “감사는 주주총회에서 선임되는데 대주주의 의결권남용에 의한 폐단을 막기 위해, 법은 의결권을 제한하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라고 썼다(제191면).
3% 룰의 도입 취지와 지향
요컨대, 상법 제정 당시 심의과정에 참여했던 학자들은 주식회사 내에서 감사의 기능에 주목했다. 그리고 감사 선임에 관한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하기 위해 3% 룰이라는 제도를 고안해 낸 것으로 보인다. 이사를 선임할 때에는 자본다수결(1주 1의결권)에 의하는데, 감사를 선임할 때마저 자본다수결에 따른다면 사내 경영감독기관이라는 감사의 본래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주식회사의 경영감독기관을 구성할 때에 대주주의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3% 룰 개선이 주식회사의 임원간 견제와 균형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권태준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