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중은행 가계대출이 일주일 만에 2조원 가까이 늘었다. 공모주 청약 열기와 단기 자금 수요가 맞물려 신용대출이 급증하면서다. 규제 시행 이전에 집행된 주택 계약 대출과 ‘막차 대출’ 수요까지 더해지면서 증가세가 가속화됐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7일 기준 760조8845억원으로, 7월 말(758조9734억원)보다 1조9111억원 증가했다.
하루 평균 약 2730억원 불어난 것으로, ‘6·27 부동산 대책’ 시행 이후 증가세가 둔화했던 7월(1335억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이달 가계대출 증가액이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해 8월(9조6259억원) 기록을 뛰어넘을 수 있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조693억원은 신용대출이었다. 이달 1~7일 신용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103조9687억원에서 105조380억원으로 급증하며 증가세를 견인했다. 7월 한 달간 4334억원 줄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배경으로는 △공모주 청약 열기 △6·27 이전 주택 계약 관련 대출의 실행 △추가 규제에 대비한 ‘대출 선수요’ 등이 거론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월초 IPO(기업공개) 자금 수요, 휴가철 지출 등 계절적 요인, 제2금융권 대환 수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IPO에 흘러 들어간 자금은 통상 청약이 끝나면 대부분 상환된다는 설명이다.
다만 신용대출 급증이 주담대 규제의 ‘풍선 효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6·27 대책에 따라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을 기존 목표의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은행들은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신청 제한으로 증가세를 억누르고 있다. 현재 하나은행·NH농협은행·신한은행의 대출모집인은 9월 실행 예정인 주담대 신청을 받지 않고 있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실행 시점과 관계없이 대출모집인을 통한 주담대 신청을 중단했다. 신한은행은 오는 10월까지 수도권 외 지역에서도 소유권 이전 등 조건부 전세대출을 내주지 않기로 했다.
은행들은 줄어든 주담대 수익성을 메우기 위해 신용대출 금리를 인하하며 규모를 키우는 중이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기관 가중평균 금리 통계에 따르면 6월 일반 신용대출 금리는 5.21%에서 5.03%로 0.18%p 하락했지만, 주택담보대출은 3.87%에서 3.93%로 0.06%p 올랐다.
고신용자 위주의 신용대출에 집중하는 현상도 뚜렷하다. 전국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4대 은행의 1등급 신용대출 금리(4.03%)가 주담대(4.02%)와 0.01%p 차로, 4월 0.2%p에서 석 달 만에 좁혀졌다. 일부 은행에선 신용대출 금리가 주담대 금리보다 낮아지는 현상도 포착된다. 하반기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을 목표치의 절반으로 줄여야 하는 데다, 신용대출은 담보대출보다 위험가중치(RWA)가 높아 무분별한 확대가 어려운 만큼 우량 차주 중심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6.27 규제 이전에 거래한 주택에 대한 잔금을 치러야 할 시기가 오면서 주담대 증가 폭마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서울 집값도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값은 0.14% 올라 상승 폭이 전주(0.12%) 대비 0.02%p 확대됐다. 상승 폭이 5주 연속 감소하다가 6주 만에 다시 오름세로 전환했다.
추가 대출 규제가 발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력한 카드로는 ‘규제지역 담보인정비율(LTV)’ 강화가 거론된다. 현재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 등 규제지역에 대한 LTV는 50% 수준이지만, 이 외 지역은 70%다. LTV가 50%에서 더 낮아질 경우, 규제지역 12억원 이상 고가주택 대출 한도는 6억원보다 더 줄어들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6월 발표된 가계부채 관리방안의 영향으로 주택담보대출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면서도 “추가 규제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로선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안은 없으며 시장 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6·27 대책 이행 상황과 지난달 가계부채 동향을 점검하기 위해 이날 회의를 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