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기본적으로 더러운 곳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해서만은 아니다. 병들고 아픈 이들이 방문하는 만큼 온갖 세균과 병균, 오물이 뒤섞여 묻어나오기 때문이다. 이에 의료기관은 그 어느 곳보다 청결과 위생이 요구된다. 한마디로 청소가 깨끗이 이뤄져야한다.
하지만 병원의 현실은 깨끗한 청소, 구석구석 청결한 환경을 갖추기엔 역부족이다. 아직 기술의 발전이 사람의 손에 미치지 못해 청소는 노동 집약적 산업에 속한다. 문제는 인력이나 지원, 심지어 의욕도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어머니는 여전히 하청 중이기 때문이다.
◇ “우린 ‘투명인간’이 아니다”… 사람다운 삶 요구하는 어머니들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청소노동자들은 대부분 하청업체들에게 고용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병원에서 직접 고용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보다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처우개선이나 임금협상조차 병원과 직접 이야기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대통령의 약속은 꿈이다.
문제는 이들이 바라는 꿈이 이뤄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국공립대학이자 빅5로 불리는 국내 최고 의료기관에 속하는 서울대학교병원이나, 최고 사립대로 불리며 역시 빅5에 속한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조차 청소노동자들은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다.
유일하게 이성의 화장실을 당당히 들어갈 수 있고,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수술실과 같은 장소도 넘나드는 이들은, 있어도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는 존재로 취급받으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고 어느 곳보다 더러운 곳을 오랜 시간 쓸고 닦는다.
때로는 메르스에 감염돼 고열에 시달리면서도 하청근로자라는 이유로 역학조사와 격리대상에서 제외돼 스스로 감염원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한동안 병원 곳곳을 다닐 수 있었던 것처럼 능력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비단 청소노동자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하청이라는 이름아래 비정규직보다 못한 하청 계약직 근로자들 대부분의 일이다. 이들은 다만 차별받지 않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소박한, 어쩌면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31일 서울대병원 1층 로비에서 이뤄진 청소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서 어머니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최저임금 1만원,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라는 희망은 고문이 되고 있다”며 “병원 유령에서 당당한 노동자로 대우해달라”는 문구가 적힌 빗자루를 치켜들며 주변에 외쳤다.
이어 시급 ‘100원’ 인상안을 내놓은 병원의 무책임함을 비난하며 ▶2017년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도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는 합의 이행과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에 맞춘 적정 도급비 지급을 촉구했다.
◇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병원 vs 파업으로 맞대응한 노동자들
하청 청소노동자들로 구성된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 서울대병원 민들레분회는 이날 단체행동에 나서며 “모든 차별과 비합리, 비인간적인 것들을 청소하기 위해 파업에 임했다”면서 “거창한 요구가 아니다. 정당한 사람으로, 정규 노동자로 대우받기 위해 나왔다”고 서두를 땠다.
이어 “3년 전 메르스가 창궐할 때 비정규직의 서러움은 극에 달했다. 모든 환자의 병실과 물품을 정돈하고 청소하는 노동자들에게 마스크 하나 지급되지 않았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이었다. 우리의 그리고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병원은 각성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나마 서울대병원 노조의 처지는 좋은 축에 속하는 듯하다.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암암리에 이뤄진 것으로 보이는 병원과 하청업체의 노조탄압과 탈퇴 압박에 시달리다 증거를 포착해 법정다툼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면 본관 로비에서 하청 청소노동자들의 피켓시위가 이어졌음에도 병원과 하청업체는 무시로 일관했다. 오히려 한국노총 산하 정규직 노조와의 교섭을 통해 견제하기 일쑤였다. 하물며 감시와 감독에서 국공립대병원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 대립과 갈등이 수년째 장기화되고 있음에도 별다른 대응이나 대책을 내놓지 않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병원은 병원과는 직접적이 관련이 없는 하청업체 계약직이라고 선을 그었다. 심지어 “하청업체의 인사에 원청이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면서 병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도리는 하고 있지만 대책을 내놓거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은 서울대병원도 유사했다.
이에 대해 노조는 ‘거짓’이라고 단언했다. 병원에서 하청업체와 계약을 통해 지급하는 도급비를 인상할 경우 적어도 최저임금을 밑도는 수준의 낮은 급여는 일부나마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 될 것이며, 적정인력의 운용을 결정할 경우 주6일, 초과근무 등 격무에 시달리는 일에서 어느 정도나마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을 통한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지만, 당장은 기대에 불과하다. 오히려 조금이나마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라도 병원에서 인식하고 받아들였으면 한다”면서 “과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님에도 병원은 귀를 막고 있다”고 가슴을 쳤다.
공공운수노조 최준식 위원장은 “우리 노동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 그런데 왜 우리들의 노동이 차별받아야 하냐”면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달라, 최저임금에 허덕이지 않게 노동한 만큼 가족과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병원만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고 있다”고 힐난했다.
최상덕 서울대병원분회장은 “우리들의 요구는 소박하다. 차별을 중단하고 동등하게 대우해달라는 것이다. 왜 정규직과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가르고 차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비정규직 없는 안전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고 끝까지 투쟁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서울대병원은 이날 이뤄진 첫 노사 만남의 자리에서 지난해 이뤄진 정규직 전환을 위한 합의사항에 대해 논의하고, 노사·전문가 협의기구를 구성하는 등 교섭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며 그간의 태도에서 일보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소감들이 많았다.
반면, 세브란스병원 정규직 전환 및 하청노동자 처우문제는 답보상태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8월 중 노조와해를 시도하는 등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원 1심 공판이 이뤄질 예정인 만큼 그 이후 구체적인 행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 병원에서 직접 고용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일반에 공개한 사안조차 세부적인 실행계획이나 방향, 일정에 대해서도 아직 세우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은 근시일내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오준엽 기자, 홍누리 학생기자 oz@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