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한 노안으로 오해받기 쉬운 황반변성은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안질환으로 인구 고령화에 따라 최근 환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당뇨 등 만성질환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제약바이오 업계가 효과적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속도를 높이고 있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황반변성은 안구 망막 중심부의 신경조직인 황반에 문제가 생겨 시력이 저하되는 퇴행성 안질환이다. 황반변성은 크게 건성과 습성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건성 황반변성은 망막 아래에 노폐물이 쌓이면서 시세포 기능이 점차 저하된다. 습성 황반변성은 망막 아래 맥락막 부위에 신생혈관이 자라나 출혈, 부종이 발생하는 심각한 유형으로, 중심 시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치료하지 않으면 실명에 이를 위험이 크다.
황반변성은 주로 노화로 인해 발생하지만 당뇨병도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 망막에 출혈이 나타나거나 신생혈관이 생기면서 시력 저하를 유발할 수 있다. 고령화와 함께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의 증가에 따라 망막질환의 발생 빈도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정은지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안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치료가 필요한 당뇨황반부종 유병률은 2017년 1만명당 11.31명에서 2022년 18.33명으로 약 62% 증가했다.
습성 황반변성의 대표적인 치료법은 항혈관내피세포성장인자(anti-VEGF) 주사 치료로, 비정상적 혈관 생성을 억제하고 출혈이나 부종을 줄여 시력 저하를 막는다. 치료제로는 스위스 노바티스의 ‘루센티스’(성분명 라니비주맙), 미국 리제네론과 독일 바이엘이 공동 개발한 ‘아일리아’(애플리버셉트) 등이 있다. 스위스 로슈의 이중특이항체 신약인 ‘바비스모’(파리시맙)도 보험급여를 인정받아 일부 환자에 사용되고 있다.
습성 황반변성 치료제들이 고령화 속 실명 위험에 대응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떠오르며 향후 시장에 등장할 새로운 치료 약물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데이터에 따르면 전 세계 황반변성 치료제 시장은 2021년 74억달러(한화 약 9조8000억원)에서 2031년 275억달러(약 37조273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치료제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케어젠의 경우 점안제 형태의 습성 황반변성 신약 ‘CG-P5’의 임상 1상을 진행하고 있다. 아일리아를 대조군으로 한 비교 임상은 오는 6월 종료 예정이다. 임상 1상 이후엔 혁신의약품(BTD) 지정에 나설 계획이다.
넥스세라 역시 습성 황반변성 점안형 치료제 후보물질 ‘NT-101’을 개발 중으로 최근 미국 임상 1/2a상의 첫 환자 등록을 마쳤다. 이번 임상시험은 미국 메릴랜드, 필라델피아, 노스캐롤라이나, 텍사스 소재 4개 임상시험기관에서 총 3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된다.
올릭스는 지난해 미국에서 건성 또는 습성 황반변성의 특성을 보이는 환자군을 대상으로 ‘OLX301A’에 대한 임상 1상을 추진했다. 임상 결과 망막 두께 변화가 없어도 시력이 개선되는 효과를 확인했다.
아일리아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 판로 확대도 이뤄지고 있다. 셀트리온의 ‘아이덴젤트’는 최근 호주 의약품청(TGA)으로부터 근시성 맥락막 신생혈관 적응증에 대해 품목허가를 획득했다. 허가 제형은 주사제(바이알), 프리필드시린지(PFS) 두 종류다. 이외에도 △알테오젠의 ‘ALT-L9’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오퓨비즈’ △삼천당제약의 ‘SCD411’ 등이 유럽 판권 확보 및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은지 교수는 “루센티스, 아일리아 등 당뇨 황반부종 치료 주사제가 순차적으로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 포함된 뒤 주사 치료 횟수는 2016년 7295회에서 2022년 1만9056회로 약 2.6배 증가했다”며 “급여화 이후 치료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실제 치료 수요가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황반부종으로 인한 실명 예방을 위해선 적정 치료가 중요하다”며 “치료 효과를 유지하면서 환자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정교한 급여 기준과 본인부담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