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3억 中 러브콜에 흔들리는 K-반도체…韓 인재 공백 심화 [K-반도체, 생존의 조건③]

연봉 13억 中 러브콜에 흔들리는 K-반도체…韓 인재 공백 심화 [K-반도체, 생존의 조건③]

기사승인 2025-09-03 06:00:09
삼성전자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 삼성전자 제공

한국은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수십조원대 투자와 지원책을 쏟아붓고 있지만, 산업을 움직이는 핵심 축인 ‘인재’ 확보에서는 번번이 허점을 드러내고 있다. 앞선 ‘3500억달러 펀드’…한국 반도체에 남는 것은 [K-반도체, 생존의 조건①] “AI 반도체 두뇌는 미국산”…K-반도체, 기술 자립 해법은[K-반도체, 생존의 조건②]에서 확인했듯, 돈과 기술만으로는 구조적 취약성을 메울 수 없다. 세계가 반도체 패권 경쟁을 넘어 ‘인재 전쟁’으로 치닫는 지금, 사람까지 붙잡지 못한다면 K-반도체의 미래는 더욱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액 러브콜, 한국 엔지니어 쓸어담는다

반도체 산업의 심장은 ‘사람’이다. 그러나 한국 반도체 현장은 갈수록 인력 공백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은 고액 연봉과 파격 복지로 한국 엔지니어를 흡수하는 반면, 국내 제도는 인재를 붙잡기는커녕 양성마저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와 기술이 아무리 앞서도 사람이 받쳐주지 않으면 반도체 산업은 모래 위에 세운 누각처럼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최근 반도체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베이징·상하이 반도체 단지에서는 최고 100만달러(약 13억원) 연봉에 주택, 자녀 교육, 비자 패키지까지 얹은 ‘올인원 스카우트’가 흔하다. 특히 AI 반도체와 전력반도체 분야에서 한국 엔지니어의 이직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단순한 인력 확보가 아니라 한국의 노하우와 경험을 사들이는 셈”이라며 “기술 이전보다 인재 확보가 훨씬 빠르고 효과적인 전략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기업도 인력 갈등…성과급·노사 불신이 발목

문제는 국내 대기업이라고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몇 년간 성과급 기준을 둘러싼 갈등으로 노사 관계가 흔들렸고, SK하이닉스 역시 올해 1인당 평균 1억원 규모 성과급을 놓고 파업 위기를 겪을 뻔 했다. 과도한 업무 강도와 수직적 조직 문화, 제한된 승진 기회 역시 젊은 인재들의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 국내 반도체 회사를 다니는 직원 A씨는 “야근과 주말 근무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중국이나 미국 기업의 유연한 근무 환경과 비교되면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국내는 학부 정원 늘려도 ‘현장 공백’ 여전

인재는 빠져나가는데, 인재 양성은 더디다. 정부가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과 대학 정원 확대에 나섰지만, 기업이 원하는 ‘현장 즉시 투입형’ 인재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학과를 졸업해도 실제 현장에 바로 투입되기까지는 평균 2-3년의 추가 교육이 필요하다. 대학에서는 주로 이론 중심 교육이 이뤄지지지만, 기업에서는 공정 노하우와 장비 운용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만 TSMC는 지난 2019년부터 ‘인재 순환 프로그램’을 도입해 전 세계 대학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조기에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도 대학원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인턴십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게 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투자·기술 다 인재가 받쳐야”…체계적 대책 필요

전문가들은 단기 처방이 아니라 장기적인 인재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AI와 HBM 같은 첨단 기술 경쟁에서 한국이 앞서려면 인재 공급망부터 확립해야 한다”며 “학부-석박사 통합 교육, 글로벌 인재 영입, 정부-기업 공동 R&D 펀드 등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반도체 특별법’을 통해 세제 혜택, 연구인력 근로 유연성, 인프라 지원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여야 간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둘러싼 반대로 국회에서 수개월째 계류 중이다.

해외 주요국은 고급 인재를 붙잡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이미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는 해외 기술 인재에게 장기 체류를 허용하는 테크패스(Tech.Pass)와 원패스(ONE Pass) 제도를 통해 고급 인재의 장기 체류·근무·창업을 지원한다. 일본도 고도전문직(HSP) 포인트제를 통해 고소득·고학력 인재가 일정 기간(1~3년) 거주하면 영주권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우대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관계자는 “수십조원의 투자 계획이 발표되지만 인재 양성 예산은 여전히 뒷전”이라며 "결국 인재 없이는 ‘K-반도체’의 미래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혜민 기자
hyem@kukinews.com
이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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