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새로운 국내 경제성장 동력을 넘어 대한민국의 글로벌 국익 창출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최근 한미관세협상 및 한미정상회담 과정에서 한미간 조선협력에 대한 논의가 핵심 현안이었다는 점은 우리가 개발하고 있는 무기체계의 글로벌 위상을 방증하였다. 역대 정부에서 방위산업 발전 및 육성을 위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였지만, 국민적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고 국내 기업들은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방위산업 육성과 지원의 중요성이 국내외적으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높지만, 그 첫 출발에 대해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정부는 기업의 혁신을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견인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방위산업발전추진단’이 출범하였지만, 현 정부의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볼지는 미지수이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 조선협력이 지향하는 비전에 대해 아무런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것을 미뤄볼 때 현 정부 관계자들의 혁신적 사고에 대한 기대보다는 우려가 크다. 일반 제조업의 산물과 달리 무기체계의 소비자가 국가이기 때문에 정부가 기업의 혁신을 유도하고 견인할 때 방위산업에 있어 혁신적 성과 창출이 가능하다. 이런 관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방위산업발전추진단’은 기업의 혁신적 노력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국내 법률, 규정, 제도 등을 먼저 혁파해야 한다.
둘째, 해외 수출 성과에 가려져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 혁신을 미뤄선 안 될 것이다. 정부와 집권 여당이 정책적 홍보 가치가 높은 수출 성과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국내 환경의 혁신적 변화 없이는 우리 방산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 및 지속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K-방산’을 이끌고 있는 지상 무기체계는 국내 사업을 통해 그 능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수출 경쟁력이 확보되었다. 수출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과도하게 먼저 추진하면 국내 방산 환경 선진화는 뒷전으로 밀려날 것이다. 이 같은 정책과 현실의 부조화는 이미 국내 사업 수주를 위해 벌어지고 있는 국내 기업 간 출혈 경쟁이 해외 시장으로 확산하는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셋째, 이재명 정부의 국정 비전과 기조를 제대로 이행할 수 있는 정책결정자들의 임명이 지체되어선 안 된다. 동일한 정책도 누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추진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물은 달라진다. 집권 초반 정책적 성과에 대한 체감도를 높이기 위해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기대감보다는 ’사람이 자리를 만든다’라는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국내 방위산업 생태계의 경쟁력과 지속가능성을 제고시키기 위해선 정책 결정자들의 ‘마인드셋(mindset)’의 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창조적 파괴를 위해선 혁신적 정책 추진에 앞서 변화를 가로막고 있는 ‘정책적 관성’을 탈피하는 것이 시급하다. 결국, 사람의 변화가 없는 정책의 변화는 그 성과에 있어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넷째, 무기체계 수출은 구매국의 정무적 판단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신규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데 있어 그 종류뿐만 아니라 제조자가 누구냐에 따라 구매국의 대외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유럽 지역 국가들은 무기체계 개발 및 구매를 위한 집단행동을 구체화하고 있으며, 중동 지역 국가들은 누구로부터 무엇을 구매했는지에 대해 비공개하고 있다. 폴란드,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등이 추진 중인 잠수함 사업 수주를 위해 국내 조선업체들이 전략적으로 협력하고 있지만, 우리 무기체계의 도입이 이 국가들이 지향하는 군사 전략적 목표 및 정무적 차원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를 제대로 설득하지 못한다면 우리 기업들의 사업 수주 가능성이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미국 조선업 붕괴를 초래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무엇보다 미래 변화에 대비한 정책이 부실했다는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방위산업은 대표적으로 일반적인 제조업 분야의 선진화에 역행하는 노동집약형 주문자 생산 산업이고, 국가를 제외한 대체 수요자가 없어서 선제적 신규 투자가 어렵고, 도입된 무기체계가 수십 년 동안 운용되는 등의 여러 특수성을 내재하고 있다. 국내 수요 감소, 생산인구 감소, 글로벌 공급망 불안, 첨단기술 발전 추세 등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을 갖춘 현행 정책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에서 지속가능성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수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박진호 전 국방부 정책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