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치료기기가 임상 현장에 도입된 지 1년 이상 지났지만, 처방률은 여전히 미진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올해까지 기반을 다지는 시기이며,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활용 폭이 넓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디지털치료기기는 의료 소프트웨어를 약처럼 처방해 질병의 예방, 관리, 치료에 사용하는 의료 기술로, 디지털치료제(DTx)라고도 불린다. 불면증 디지털치료기기의 경우 병원에서 시행하는 습관 교정, 수면 질 평가 등 인지행동치료 요소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탑재해 환자가 집에서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의사는 처방과 함께 주기적으로 환자에게 피드백을 제공한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는 총 6개의 디지털치료기기가 임상 현장에 도입됐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3년부터 △에임메드의 ‘솜즈’ △웰트 ‘슬립큐’ △뉴냅스 ‘비비드브레인’ △쉐어앤서비스 ‘이지브리드’가 출시된 데 이어, 올해는 뉴라이브 ‘소리클리어’와 하이의 ‘엥자이렉스’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았다.
활발한 허가 양상과 달리, 임상 현장의 활용도는 다소 위축된 모습이다. 국산 디지털치료기기 1호 허가를 받은 에임메드는 지난해 1월 6개 상급종합병원에서 불면증 치료기기인 ‘솜즈’의 정식 처방을 시작했으나, 그간 처방 건수는 100여 건에 불과하다. 웰트의 불면증 치료기기 ‘슬립큐’도 같은 해 6월부터 세브란스병원에서 처방이 가능해졌지만, 급여 문제로 인해 한 달 만에 홍보 및 마케팅을 중단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2월 시작된 전공의 파업과 맞물려 신규 처방률이 급격히 줄었다”며 “20만원대의 비급여 비용을 부담하면서 새로운 기기를 시도하려는 환자도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급여를 적용해도 본인부담률이 높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며 “디지털치료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제도적 논의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디지털치료기기는 국내 의료 현장에서 생소한 기술이다. 성공적 시장 안착을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이어진다. 미국에서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치료기기 승인을 받았던 페어테라퓨틱스가 급여 등재에 실패하면서 낮은 처방률을 극복하지 못하고 파산한 바 있다. 이에 국내 디지털치료기기 업계도 급여 시스템과 처방 환경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큰 상황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디지털치료기기 도입이 초기 단계인 만큼, 처방 건수를 늘리기보다는 치료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크다. 특히 제품들이 내년부터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과하게 되면, 처방 가능한 의료기관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활용 범위도 넓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이유진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불면증 디지털치료기기 솜즈는 지난해 정식 처방이 시작됐고, 만성 불면증 환자를 대상으로 실사용 데이터를 수집해 효과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는 단계”라며 “올해 말까지 데이터를 분석한 뒤 내년 신의료기술 평가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되면 처방 가능성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치료 효과에 대해서도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는 “시간, 거리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해 대면 인지행동치료를 받기 어려웠던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었으며, 복용 중이던 수면제를 감량한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체 의료기관의 처방 환자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뒤에야 객관적 효과를 입증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디지털치료기기의 실질적 활용을 위해선 제도 간소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된 이후에는 더 많은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건강보험 적용 절차가 합리적으로 간소화돼야 한다”며 “디지털치료기기는 약물치료보다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절차가 혁신을 저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디지털치료기기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건강보험 등재 방안을 검토 중이다. 더불어 적용 대상 제품과 적정 수가 기준 등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에 급여 시장에 진입하는 디지털치료기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혁신의료기술로 고시된 디지털치료기기는 건강보험에 임시 등재돼 한시적으로 수가를 적용받고 있다. 2~3년간 임상 검증을 거쳐 신의료기술 평가를 통해 정식 등재 여부가 결정된다. 평가에서 효능과 안전성이 입증되면 모든 의료기관에서 처방이 가능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