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視線] 천안은 큰 행사 더이상 만들지 말자

[조한필의 視線] 천안은 큰 행사 더이상 만들지 말자

기사승인 2025-06-15 17:01:25
최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2025 천안 K-컬처박람회.  사진=조한필 기자

천안 K-컬처박람회가 3번째 행사(4~8일)를 치르자마자 폐지 위기를 맞았다. 더불어민주당 천안시의원들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행사 예산 삭감을 예고했다. 빵빵데이(14~15일)도 그 대상임을 알리며 이틀 후 열릴 행사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들은 “전임시장의 치적쌓기용, 전시성 행사, 명백한 세금낭비”라며 “과감히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박상돈 전 시장이 지난 4월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한 뒤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현실로 닥치자 살벌한 정치 현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3년간 독립기념관서 며칠씩 땀을 흘리며 취재한 노력이 허사가 되는 건 아닐까.” 박람회 취지와 성장 가능성에 애착이 깊었던 만큼 허탈감도 그만큼 컸다.

지난 6일 오후 1시 영상·웹툰·게임전시관을 둘러보는 시의원 일행이 국민의힘 소속 일색일 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민주당 시의원들은 행사장에서 본 적이 없었다. 폐지를 주장하려면 행사를 꼼꼼히 살펴보는 성의를 먼저 보여야 했다. 수많은 인력과 예산이 투입되어 3년간 준비한 박람회를 없애려면, 그 정도 노력은 당연한 전제다.

폐지를 주장하는 논거가 지엽적이다. “문화누리카드 사용할 수 없어 취약계층이 참여 못했다. 지역상권이 배제됐다. 교통 체증으로 주변 농민들이 농기계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 등이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핵심적 내용, 즉 박람회의 콘텐츠 문제점, 나아가 포괄적 개최 가치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 했다. “경제유발 효과가 적다”는 미심쩍은 통계나 “관람객이 늘었다”는 단순한 수치 모두 존폐를 논하는 데는 부족하다.

K-컬처는 21세기 대한민국이 세계에 내놓는 대표 콘텐츠다. 독립기념관은 우리 민족의 성지다. 세계로 뻗어가는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K-컬처의 현재와 미래를 독립기념관에서 조명하고 준비하자는 시도는 분명 가치가 있다. 천안의 대표 축제인 흥타령춤축제를 넘어설 잠재력을 가진 기획임이 틀림없다.

흥타령춤축제는 천안삼거리문화제에서 출발해 해를 거듭하며 진화해왔다. 하지만 최근 천안삼거리공원 ‘명품화’ 사업으로 인해 더는 이곳에서 열 수 없게 되었다. 축제의 장소성과 역사성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축제와 대형 행사는 지역을 알리는 효과가 크다. 전국 도시들이 여기에 몰두하는 이유다. 시장·군수가 바뀔 때마다 축제가 생기고 사라짐을 거듭한다. 후일 가장 눈에 띄는 치적이 될 수 있어서다. 

10여년 전, 천안에는 웰빙식품엑스포라는 대형 행사가 있었다. 당시 관심이 집중됐던 웰빙식품 주제로 열려 관련 업계 활성화에도 기여했지만 시장이 바뀌면서 사라졌다. “행사를 발전시켜봤자 전임 시장과 상대 정당만 좋은 일 시킨다”는 생각이 작용했을까. 

정치권의 이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천안서 새로 만든 큰 행사가 살아남기 어렵다. 시장은 재선, 3선 할 자신이 없으면 더 이상 축제나 행사를 만들지 말자. 새 시장이 선출돼 행사 존폐를 결정하기도 전에 시의원들이 이렇게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이재명 대통령은 “세계인이 울고 웃는 콘텐츠로 미래산업을 창출하자”며 문화강국 공약을 내세웠다. 이 대통령은 K-팝, 드라마, 웹툰, 게임, 푸드, 뷰티 등의 세계진출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K-컬처 시장을 300조 원 규모로 키우겠다는 비전도 제시했다. 

천안은 3년간 총 100억원 이상 들여 K-컬처박람회를 열었다. K-컬처의 상징적 행사를 3회째 열었다. K-컬처의 상징적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다른 도시가 부러워할 수도 있는 위치를 선점했음에도, 깊이 있는 논의 없이 쉽게 폐기하려드니 너무 안타깝다. 웰빙식품엑스포처럼 뒤늦게 후회할지 모른다.  /천안·아산 선임기자

2023년 처음 열린 천안 K-컬처박람회. 산업 포럼에서 CJ푸드 관계자가 비비고 만두의 세계 진출을 소개했다.  조한필 기자

2024년  천안K-컬처박람회 웹툰산업전시관의 '나혼자만의 레벨업' 특별전 모습.  조한필 기자


조한필 천안·아산 선임기자
조한필 기자
chohp11@kukinews.com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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