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아 건강을 유지하면 치매보험료를 할인해주는 상품이 일본 보험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규제에 가로막혀 출시가 불가능하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정책적 유연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유사한 치매보험은 국내에서는 출시되기 어렵다. 금융당국이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보험료를 정하는 요율 산출 기준에 어긋난다는 이유다.
일본 다이이치생명그룹 계열사 네오퍼스트는 지난 2021년 ‘치매보험 to 스마일’을 출시했다. 치아 건강을 반영해 보험료를 할인해 주는 상품으로, 치매 진단 시 100만엔(약 1000만원)에서 최대 500만엔(약 5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한다. 이 보험은 일본 보험전문매체가 뽑은 개호보험(요양보험) 부문 1위에 여러 차례 선정됐으며, 올해 들어서도 판매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상품의 핵심은 치아 건강과의 연계다. 구체적으로는 보험 가입자가 70세까지 영구치 20개 이상을 유지하면 보험료가 15~20%가량 할인된다. 예를 들어 50세 남성이 월 2만5000원가량의 보험료로 가입한 뒤, 70세에 영구치 20개 이상을 유지하면 이후 보험료가 약 2만원으로 인하된다. 여성의 경우도 월 보험료가 약 3만원에서 2만5000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국내외 학계에서 치아 건강과 인지기능 사이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뉴욕대학교가 3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잔존치아가 20개 미만인 집단은 20개 이상 보유 집단에 비해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48%, 치매 발병 위험은 28% 더 높았다. 서울대 의대와 치의학대학원이 공동으로 1800명에 대해 진행한 연구에서도 잔존치아가 적을수록 인지기능점수가 유의하게 낮았다.
그러나 금융당국은 ‘상관성’과 ‘인과성’은 엄연히 다르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치아 상태와 치매 발병 사이에 통계적으로 상관성이 일부 존재할 수는 있지만,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된 것은 아니다”라며 “보험료 할인 자체가 계약자 간 차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험업법에 따르면 보험료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산출돼야 하며, 보험사고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요인으로 보험료를 차등할 경우 부당한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
일본과 달리 한국 내 제도적 기반이 부족한 점도 걸림돌이다. 일본은 지난 1989년부터 ‘8020 운동(80세까지 영구치 20개 유지)’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추진해 왔다. 이 정책을 통해 80대 인구의 영구치 보존율은 10%대에서 50%대로 급증했으며, 공공의료정책과 보험상품 간 연계도 활발하다. 반면 한국은 아직 국가 차원의 구강 건강 유지 캠페인이나 인센티브 제도가 부족한 실정이다.
보험업계에서는 정책적 목적이 명확할 경우 인과성 입증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보험료 할인 상품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 자동차보험은 임산부에게 별도의 통계 없이도 보험료 할인 특약을 제공한다. 출산 장려라는 정책적 목적이 반영된 결과다. 이와 비슷하게 치매 예방이라는 사회적 목적이 명확하다면 치아 건강 기반 보험료 할인도 제도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서혜원 대한치매구강건강협회 총무이사는 “치아 개수와 인지기능 저하 사이의 연관성은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인과관계까지도 과학적으로 입증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는 고령화로 치매보험 상품의 수요가 급증하는 만큼 중장기적 관점에서 상품화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고객에게 나쁠 것이 없는 상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