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회사 내에서 회의록 작성을 위한 목적을 넘어, 일상적인 회의나 대화 중에도 상시로 녹음 기능을 켜두는 직원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대화 당사자일 경우 녹음은 불법이 아니다’라는 인식 아래, 자동 통화 녹음을 넘어 직장 생활 전반에 걸쳐 녹음을 일상화하고 있다.
스마트폰이라는 손 안의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상대방의 동의 없는 행위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이러한 행위는 비겁한 것으로 여겨졌고, 사회적으로도 쉽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법적 분쟁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하고 유리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적인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국내의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에서도 어김없이 녹음이나 녹취 자료가 등장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사례를 자주 봐왔기 때문일 것이다.
녹음과 관련된 법률인 통신비밀보호법에서는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는 사람을 형사처벌하고 이러한 방법으로 취득한 증거는 재판이나 징계 절차에서 사용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대 해석상 나 자신이 당사자로 참여해 나눈 대화는 몰래 녹음을 하더라도 그 행위가 처벌되지 않고 재판 등에서 사용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사내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녹음을 하려는 직원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직원들은 아직 소수, 아니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불법은 아니지 않느냐”며 이를 용인하게 되면, 직장 내에 무분별한 녹음 문화가 조성되는 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무분별한 녹음을 하는 직원은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면책 근거를 찾을 수 있겠지만 상대방 역시 헌법 제10조가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여기에서 파생되는 인격권, 음성권 등을 보호받아야 한다. 최소한 직장 내에서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은 지양되어야 마땅하다.
그렇다면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에 대해 회사는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무단 녹음이 불법행위에 해당할 경우, 이는 직장 질서를 해치는 행위로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대법원 1995.12.31. 선고 95다184 판결) 따라서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정에 ‘건강한 직장 질서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사내외를 불문하고 구성원을 대상으로 한 당사자 동의 없는 무단 녹음은 금지되며, 위반 시 징계될 수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이를 구성원들과 널리 공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 사건처럼 증인이 없는 경우에는 채증이 어려울 수 있다. 이때 무조건 녹음 금지 규정을 적용해, 녹음 자료를 접수하지 않거나 징계까지 이어질 경우 추후 신고자에게 불이익 처분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이 불법행위를 구성하는 경우에만 징계 사유로 삼을 수 있다. 따라서 괴롭힘이나 성희롱처럼 입증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이루어진 녹음은,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녹음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은 어떨까? 영국과 일본의 경우, 상대방의 동의 없이도 대화 녹음은 가능하지만, 이를 제삼자에게 공개하는 것은 금지된다. 독일은 녹음을 위해 사전 고지를 해야 하며, 그 활용 목적도 명확히 밝혀야 한다. 프랑스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금지할 뿐만 아니라, 녹취 파일을 소지하고 있기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된다. 이처럼 최소한 동의 없는 대화의 외부 공개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히 제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직장 내에서 녹음이 불가피한 상황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 통념을 벗어난 무분별한 대화 녹음은 건강한 직장 문화를 해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은 음성권 침해 등 불법행위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회사는 무단 녹음을 사전에 금지하는 내용을 명문화하고, 사내 녹음 근절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 구성원들과 널리 공유해야 한다. 정정당당하고 공정한 신뢰 기반의 조직 문화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글·김효신 노무사
소나무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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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 HR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