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가 금융·통신·수사기관의 보이스피싱 정보를 통합 분석하는 ‘보이스피싱 인공지능(AI) 플랫폼’을 연내 출범시킨다. AI 기술로 사전에 범죄 패턴을 탐지하고, 전산화된 정보 공유 체계를 통해 지급정지 등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금융위원회는 28일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보이스피싱 근절을 위한 현장간담회’를 열고 AI 기반 통합 대응체계인 ‘보이스피싱 AI 플랫폼(가칭)’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간담회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국무회의에서 보이스피싱에 대한 특단의 대책을 지시한 이후, 10여 차례의 실무 회의를 거쳐 마련됐다.
권대영 부위원장은 “AI·딥페이크, 가상자산, 스미싱 등 최신 기술을 악용한 보이스피싱이 빠르게 진화하고 있으며, 올해 피해액이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며 “더 이상 현 제도에 안주해선 안 되며, 범정부 차원의 제도 개선과 금융회사와 언론,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의 고수의 목소리를 경청해 예방–차단–구제–홍보의 전 단계에 걸쳐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서는 피해사례와 제도 개선 제안이 이어졌다. 서귀진 전 성남시청 금융전문관은 고금리 사채 전단지 회수 조치 사례를 소개하며 “불법 전단지 회수와 전화번호 정지 조치를 통해 사채 피해를 획기적으로 줄였다”며 “신종 금융범죄에는 기존 틀을 뛰어넘는 과감한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재철 농협은행 단양지부장(전 전화사기 대응팀장)은 통장 개설 차단, 이상거래탐지시스템(FDS) 등 통합 사전예방부터 피해금 환급까지 단계별 대응 필요성을 강조하며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의 절차와 규제 범위 정비, 금융회사 대응인력 확충, 매체를 활용한 고령층 대상 범죄수법 안내, 알뜰폰 및 1인법인 통장 개설 차단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수사당국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원충 서울남대문경찰서 수사팀장은 “수표 편취 등 금융회사를 거치지 않는 수법은 실무상 단속이 어렵다”며 피해 구제 절차도 복잡해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윤상 서울경찰청 수사팀장은 “악성앱 관련 정보를 수사기관이 확보해도 법적 제약으로 금융회사와 공유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이 정보 집중·공유 창구로 기능한다면 사전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유 금융보안원 팀장은 “금융사는 각자 FDS를 운영하고 있지만 각 사간 정보 공유가 부족해 역량·성과가 제각각”이라며 “플랫폼을 통해 금융–통신–수사기관 간 정보가 연계되면 범죄 사전 차단 효과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보이스피싱 AI 플랫폼(가칭)’을 도입한다. 금융권·통신사·수사기관이 보유한 정보를 한데 모아 보이스피싱 범죄를 사전 탐지·차단하기 위한 통합 인프라다. 각 기관의 데이터가 △ 긴급공유 필요정보 △ AI 분석정보로 분류된다.
‘긴급공유 필요정보’는 피해의심자 연락처 등 즉시 공유가 필요한 정보로, 각 금융사·수사기관 등이 신속하게 지급정지 등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여러 금융기관에 흩어진 범죄자 계좌를 동시 차단하고 자금 도피를 신속히 차단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AI 분석정보’는 수많은 금융회사 계좌 중 보이스피싱 의심계좌의 특징을 분석·파악해 사전 식별하기 위해 집중하는 정보다. 계좌 개설 내역 등 패턴 정보를 바탕으로 금융보안원이 최신 범죄 수법을 분석하고 의심계좌를 사전 탐지·차단하는 데 활용된다.
정부는 탐지 역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제2금융권도 효과적인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통신사·수사기관은 플랫폼을 활용해 신규 차단 서비스 개발이나 수사 전략 수립 등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금융사–통신사–수사기관 간 업무협조·정보교류 등도 한층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전화·FAX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협조 요청을 구해야 했으나, 플랫폼 도입 후에는 전산화된 방식으로 즉시 대응이 가능하다.
금융위는 3분기 중 ‘보이스피싱 AI 플랫폼 운영기준’을 마련하고, 정보 공유 항목 선정, 개인정보 오남용 방지책, 정보집중 대상 표준화, 리스크 지표 개발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4분기 중 플랫폼을 공식 출범시키고, 참여 범위는 금융권에서 통신사·수사기관으로 단계적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도 3분기 중 마련한다. 해당 개정안에는 보이스피싱 의심정보를 기관 간 공유하기 위한 특례 조항이 담길 예정이다.
금융위는 플랫폼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 간담회, 현장 공모전 등을 통해 추가 제도개선 과제를 발굴할 계획이다. 아울러 플랫폼 명칭도 대국민 공모를 통해 선정해 실무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친숙한 정책 인프라로 다가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권 부위원장은 “보이스피싱 AI 플랫폼은 금융위가 구상 중인 대책의 첫걸음”이라며 “예방–차단–구제–홍보 각 단계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정책 과제를 끈질기게 고민해 순차적으로 발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