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염과 폭우 같은 극한 기상현상이 물가를 일시적으로 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1년 이상 장기간 상승 압력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후 대응이 지연될 경우, 향후 25년 뒤부터는 기후 요인에 따른 물가 상승세가 현재보다 두 배가량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은행이 8일 발표한 ‘극한기상 현상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일 최고기온이 섭씨 1도(℃) 오르는 고온충격 발생 시 국내 소비자물가상승률에 24개월 이상 장기적인 영향을 미치고, 0.055%포인트(p) 물가를 끌어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별 일최다 강수량이 과거 평균보다 10㎜ 많은 ‘강수 충격’도 15개월 이상 소비자물가에 0.033%포인트(p)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기상충격이 극한 수준에 이를수록 물가 영향은 확대됐다. 폭염에 따른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을 보면 ‘일반 고온 구간’(상위 5% 미만)에서는 1년 평균 0.043%p 수준이지만, ‘극한 고온 구간’(상위 5% 이상)에서는 0.11%p로 2.5배 이상 확대된다. 단위 고온충격에 일일 최고기온 상승폭을 곱한 총 물가상승 압력은 일반 고온에서는 0.03%p 수준이지만, 극한 고온에서는 0.56%p까지 확대됐다.
세부적으로는 상품물가는 고온·강수 충격에 상승압력을 받았다. 서비스 물가는 고온은 상승압력을, 강수에는 하락압력을 받았다. 강수충격이 서비스 수요 감소에 더 영향을 미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연정인 한국은행 지속가능성장실 과장은 “기상 충격의 크기에 따라 극한기상 현상 구간과 그 외 구간을 나눠 물가영향을 추정한 결과, 충격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는 극한구간에서 기상 충격의 영향력이 비선형적으로 급격히 확대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전망은 더욱 어둡다. 기후대응 노력이 지금보다 축소·지연될 경우(고탄소 경로), 2100년까지 물가 상승 압력은 현재보다 1.5배(강수 충격) 또는 2배(고온 충격) 확대될 것으로 추정됐다.
2100년 연 최고기온이 평균 42.2도까지 오른다는 전망 하에 고온 충격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은 2031~2050년 중 0.37~0.60%p, 2051~2100년 중엔 0.73%~0.97%p 늘어나 현재(0.32~0.51%p)보다 2배 가량 늘어날 수 있다. 이는 기존 연구 추정치 연평균 0.037%p를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강수 충격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2100년경 일 최다 강수량이 평균 178.8㎜까지 증가하면 물가상승 압력은 2031~2050년 0.34~0.58%p에서 2051~2075년 0.34~0.58%p, 2076~2100년 0.47~0.71%p로 확대돼 현재 대비 약 1.5배 증가할 전망이다.
연 과장은 “농축수산업 등 기후 취약 부문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기후변화 적응 관련 투자를 늘리고 기상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조기에 파악·예측할 수 있는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극한 기상이 실물·금융경제와 통화정책 운용 여건 등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연구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