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건물 1층 로비로 내려가 비상구를 연다. 그리고 계단 앞에 선다. 당신은 몇 층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을까. 일단 심호흡을 한 번 했다. 그리고 호기롭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건물은 총 19층. 요즘 트레이너의 명령과 감시 속에 천국의 계단으로 불리는 운동 기구도 타고 있다. 거뜬하게 오를 줄 알았다는 의미다. 7층에서부터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13층쯤엔 신발에 무게추가 달린 듯했다. 18층에 다 와서는 두 다리와 더불어 두 팔도 함께 쓰고 싶어졌다. 여기에 녹즙이 가득 든 가방을 하나 멨다고 가정해 보자. 난이도는 치솟는다.
최근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된 게시물이 하나 있다. 방송인 장성규가 출연했던 유튜브 채널 ‘워크맨’의 한 에피소드 장면이다. 워크맨은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다. 해당 회차에서는 녹즙을 배달하는 일을 현직자와 함께했다. 두 사람은 건물 출입과 관련한 대화를 나눴다. 배달원은 증권가의 경우 새벽 4시에 도착해야 하고, 엘리베이터를 못 타고 계단으로 이동해 배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논란이 일어난 건 최근이지만, 해당 콘텐츠가 업로드된 건 무려 지난 2019년이다. 조금 더 찾아봤다. 이 영상은 공개된 지 6년이 지났지만, 몇 년 주기로 다시 공유되며 그때마다 온라인에서 공분을 불러왔다. 왜 엘리베이터를 못 타게 하느냐, 그 높은 건물을 대체 어떻게 올라가라고 하는 것이냐, 보안상의 문제 때문이라면 1층에 물품을 둘 수 있는 전용 공간을 마련하면 되는 것 아니냐 등의 의견이 줄지어 달렸다.
같은 게시물이 재공유될 때마다 같은 분노가 쏟아지는 건, 그사이 달라진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올해 폭염 속에서도 일부 지역의 택배 차량은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기사들은 입구에 상자를 쌓아두고 손수레를 끌며 집마다 배달한다. 주민들은 안전과 미관을 이유로 내세운다. 갈등은 수년째 반복되고 있지만, 제도적 해결책은 지지부진하다. 불편과 고통은 기사 몫이다.
노동자의 휴식조차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밀려난다. 청소 노동자의 휴게 공간은 지하 주차장 한쪽, 창고 옆, 계단 밑이다. 천장이 낮아 허리를 펴기도 힘든 곳, 곰팡내가 배어 있는 그곳. 지난 2021년, 노동자의 휴게시설을 조명하는 시리즈 기사를 썼다. 취재 당시 만난 한 대학교 청소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쉬는 동료들이 있어요. 휴게실이 있지만, 마음 놓고 쓰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근무지에서 멀기도 하고, 왔다 갔다 하기도 눈치가 보이거든요.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화장실뿐이에요. 청소 노동자를 보는 눈이 그래요. 할 일은 하되 보이지 않는 데 있어 달라는 거죠.”
노동은 해야 하지만,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규칙. 필요하지만, 존중하지 않는 태도. 그 모순된 관행이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은 누군가의 땀으로 얼룩진 계단 위에 세워졌다. 보이지 않는 노동을 짓눌러 쌓은 사회는, 결국 우리의 무게에 의해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