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는 생존에 필수적인 학습반응으로, 생물은 위협적인 사건을 경험한 이후 유사한 상황을 회피하려는 행동을 학습한다. 그러나 공포기억이 과도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우울증, 공황장애 등 다양한 정신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존 공포기억 연구는 주로 전기자극과 같은 신체 통각자극 위주여서 실제 일상에서 노출되는 심리적 공포기억과 차이가 발생한다.
때문에 심리에 기인한 비통각 기반 공포기억을 조절하는 신경회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심리적 고통이 신체적 고통과 다른 경로로 전달되는지를 입증할 신경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정서적·신체적 고통 공포감 뇌 회로 달라
KAIST 생명과학과 한진희 교수팀이 감각적 고통 없이 심리적 위협만으로 유도되는 공포기억의 형성을 조절하는 ‘후측 대뇌섬엽-외측 팔곁핵(pIC-PBN) 회로’를 규명했다.
이번 연구는 정서적 고통과 신체적 고통이 서로 다른 뇌 신경회로로 처리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 실험으로 입증한 성과다.특히 정서적 고통을 전달하는 데 특화된 pIC-PBN의 역할을 명확히 제시해 신경과학 분야에 큰 학술적 의미를 제시한다.
연구팀은 동물모델로 실험한 결과 pIC–PBN 회로는 후측 PBN으로 이어지는 하향 신경 경로로, 심리적 고통정보를 전달하는 전용 회로임을 새롭게 밝혀냈다.
이번 연구에서 비통각적 위협 자극에 의해서도 PBN이 공포학습에 필수적으로 기능함을 새로 입증했다.지금까지는 PBN은 척수에서 통각정보를 전달받는 통각 상행 경로의 일부로만 알려졌다.
연구팀은 심리적 위협을 처리하는 뇌 회로를 찾기 위해 전기자극이 아닌 시각적 위협자극을 사용하는 새로운 공포 조건화 생쥐 실험모델을 개발했다.
생쥐는 매 등의 포식자가 위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상황에 본능적인 공포반응을 보인다.
연구팀은 이를 활용해 천장 화면에 빠르게 커지는 그림자를 구현해 생쥐가 포식자에게 공격당하는 것과 같은 위협을 가함으로써 통각 없이도 심리적 위협만으로 공포기억이 형성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아울러 연구팀은 신경세포 활성을 정밀 조절하는 화학유전학 및 광유전학 기법을 활용, PBN이 시각적 위협만으로도 공포기억이 형성됨을 규명했다.
실제 시각적 위협 자극 이후 pIC에서 PBN으로 투사하는 신경세포들이 활성화됐고, 이 경로를 광유전학적으로 억제했을 때 공포기억 형성이 현저히 감소했다.

이와 함께 PBN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상위 뇌 영역을 분석한 결과 부정적 정서와 고통 처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후측 대뇌섬엽(pIC)이 PBN과 직접 연결됨을 확인했다.
특히 시각적 위협자극 이후 pIC에서 PBN으로 신호를 보내는 뉴런들이 활성화되며, 이 신호가 PBN 뉴런의 활성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연구결과 pIC–PBN 회로를 인위적으로 억제하면 시각적 위협에 따른 공포기억 형성이 현저히 감소하지만, 선천적 공포 반응이나 통각 기반 공포학습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반면 이 회로를 인위적으로 활성화하면 공포기억을 유도해 pIC–PBN 회로가 심리적 위협정보를 처리하고 학습을 유도하는 핵심 경로가 됐다.
이번 연구의 제1저자인 KAIST 한준호 박사는 "반려견이 실제 사고를 겪지 않았음에도 오토바이 소리만 들리면 겁 먹는 것을 보고 경험이나 미디어 노출만으로도 공포기억이 발생할 수 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며 “지금까지 공포 기억에 관한 연구는 신체적 고통 실험에 의존했지만, 실제 사람의 공포기억은 심리적 위협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이번 연구는 PTSD,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 정서적 정신질환의 발병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향후 공포기억을 정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뇌 회로 기반 치료법 개발과 정신건강 질환의 예방 치료전략 수립에 실질적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KAIST 서보인 박사가 제2저자로 참여했고,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지난 9일자 온라인에 게재됐다.
(※ 논문명 : Han, J., Suh, B., & Han, J. H. (2025). A top-down insular cortex circuit crucial for non-nociceptive fear learning. Science Advances (https://doi.org/10.1101/2024.10.14.6183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