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득 든 생각은 기준과 철학이 없는 경제정책의 일종의 희생양 같은 게 아니었을까였다. 모든 시장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그에게, 혹은 측근에게 경제 포식자처럼 인식된 게 아니었을까. 물론 문어발식 사업 확장과 불법을 넘나드는 운영방식에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긴 했지만 플랫폼 기업에 대한 대통령의 질책은 정책의 흐름을 무시한 채 생뚱맞게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 화제 전환용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기준 없는 전 정부의 경제정책은 말로는 혁신과 개혁을 자처했지만 기업들을 규제와 사정의 대상에 몰아넣기 바빴다. 상대를 조사하고 벌을 주던 태생으로 협의나 연구라는 작업이 낯설었던 대통령의 작품이었을 것이다.
다 채우지 못한 임기 동안 온라인 플랫폼 산업엔 악재가 쌓였다. 중복 규제가 판을 치고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으며 글로벌 시장과의 기술 격차를 가속화시켰다. 과도한 규제는 신산업 성장을 가로막아 또 다른 독점을 낳는다는 간단한 경제 원리조차 통하지 않았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규제 형평성 문제까지 수면 위로 드러났고 자꾸 떠오르는 부작용 풍선효과에 땜질 처방으로 대처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당장 플랫폼 규제는 AI 산업의 발전을 위협하는 가장 큰 장애물로 성장했다. 정부가 나서 자유로운 민간경쟁 속에서 글로벌 시장 강자를 만들 기회를 끊어낸 것이다.
AI 산업이 핫이슈인 만큼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도 관련 정책들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급히 치러지는 선거 때문이었을까. 투자 생태계 조성, 인공지능 대전환 등 정확히 뭘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알맹이 없는 공약들로 채워졌을 뿐이다. 물론 그 이외의 공약들은 퍼주기식 포퓰리즘 정책들이 자리했다. 후보들의 면면을 봐도 AI 산업 진흥의 적임자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미 한국의 AI 시장은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탄식이 나오지만 경제 전문가 한 명 없는 대선의 판도에서 이상의 기대는 무리 같아 보인다.
경제 위기가 예고된 지금 새로운 정부에게 바랄 것은 딱 하나, 전시용 규제 대신 자율에서 시작된 혁신이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듯 산업의 이해와 정책 연구 없이는 경제 전체를 망친다는 인식이 있는 진중한 대통령이 꼭 필요하다. 여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 후보가 현실적인 공약을 냈는가, 그 공약이 국민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 그렇지 못했다면 소통은 가능한가, 사람을 잘 써서 만회할 역량이 있는가 정도가 다음 대통령의 기준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워낙 전임이 국정의 기준을 낮춰놓다 보니 민간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토대만 마련해도 5년 후 중간은 했다는 평을 들을 수 있겠다.
정순영 산업부장 binia96@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