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봄, 경북 일대를 덮친 초대형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지역 농촌 사회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삶과 일터, 공동체가 한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피해 주민들은 여전히 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농사용 비닐 제작 및 유통업에 종사하는 A씨는 산불 당시 영남권 전역을 직접 누비며 상황을 지켜본 산증인이다. 하루에도 충북 제천에서 경남 하동까지 영남권 전역을 100km이상 돌아다닌다. 그는 “집도 타고 농기계도 모두 타버렸다”며 “복숭아나무, 자두나무도 다 죽어 농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A씨의 고향인 안동 망호리, 운산면, 고운사 인근 마을은 산불로 인해 거의 전소됐다. 불길은 단촌면과 의성, 영덕까지 번졌다. 다행히 일부 마을은 피해를 면했지만 주변은 초토화됐다. 고령의 피해 주민들은 현재 임시 숙소나 자녀의 집에 얹혀 살고 있으나 “편할 리가 없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농사를 생업으로 삼아온 고령 주민들에게 이번 산불은 생존의 기반 자체를 앗아간 사건이다. 집과 농기계뿐만 아니라 수십 년 키운 과수나무까지 소실되면서 “땅만 있어선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에 직면했다. 일부는 농기계를 빌려 힘겹게 다시 시작하고 있지만 포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은 아직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공무원들이 피해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실질적인 보상이나 재건 지원은 지연되고 있다. “일을 아예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실질적인 도움은 거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고령자들의 경우 주택 재건 등 실질적 지원 없이는 자력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A씨는 80대 한 마을 주민의 말을 전하며 “죽지 못해 사는 중”이라는 현실을 알렸다. 그는 이어 “불은 꺼졌지만, 피해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잿더미 속에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3월26일부터 4월11일까지 17일간 ‘경북·경남 산불 피해 현장지원반’을 운영했다. 과장급 84명을 포함해 총 299명의 공무원이 투입됐다. 임시대피시설과 피해 현장 등 467곳을 방문해 285건의 민원을 처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부 공무원은 양동이로 물을 퍼 나르며 잔불 진화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