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비급여 진료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환자의 치료 접근성과 의료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한 균형 잡힌 규제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은 ‘비급여 분류체계 정비를 위한 연구’ 용역과제 제안 요청서를 공고했다. 건보공단은 연구를 통해 비급여 항목 분류 기준을 마련하고, 급여와 병용하는 비급여의 범위를 규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앞서 일부 비중증·비급여 의료 행위를 선별급여 제도 내 ‘관리급여’로 지정해 환자가 진료비의 90~95%를 부담하게 하고, 병행진료를 통제하는 내용 등이 담긴 ‘의료개혁 2차 실행안’을 발표했다. 정부가 꼽은 대표적 과잉 비급여는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다초점렌즈삽입술, 하이푸(고강도 초음파 집속술) 등이다.
비급여 수요 증가는 과잉진료라는 부작용을 양산하며 의료현장과 건강보험 체계를 왜곡하는 주된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건보공단의 ‘2024년 상반기 비급여 보고자료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분 1068개 비급여 보고 항목의 진료비 규모는 총 1조8869억원이다. 병행진료 팽창은 실손보험과 관련이 깊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실손보험 가입자는 전 국민의 78%인 4000만명에 이르며, 한해 지급한 실손보험비만 14조원을 기록했다. 이 중 비급여 항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57%에 달한다.
비급여·실손보험 규제 필요성엔 많은 국민이 동의하는 편이지만, 과도한 통제는 환자 피해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의료계는 과학적 검증과 평가를 거쳐 필요한 비급여 항목을 분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영모 대한하이푸연구회 회장은 정부의 비급여 진료 통제 발표 이후 자궁근종 환자들에게 하이푸 시술을 권하기 어려워졌다고 전했다.
하이푸 시술은 인체에 무해한 고강도 초음파를 종양에 집중 조사해 괴사시키는 치료법으로, 자궁을 적출하는 수술 없이 근종을 제거할 수 있다. 하이푸는 2013년 정부가 신의료기술로 지정한 뒤 2015년부터 비급여 의료 행위로 인정받았다. 이후 의학적 근거가 쌓이면서 2016년 대한산부인과학회가 치료 가이드라인을 마련했고, 지난해 2월 진료지침 개정이 이뤄졌다.
성 회장은 “자궁근종 치료에 하이푸가 실손보험 적용을 받으며 개원가를 중심으로 활용되자 정부가 관리에 나섰고,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면서 소송을 빚는 사례가 줄을 잇게 됐다”며 “좋은 취지로 시작한 정책이라도 환자 피해로 이어지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하이푸를 받은 자궁근종 환자 90% 이상이 상처 없이 시술 당일 일상생활이 가능하지만, 시술 후 갈등이 생기다보니 환자에게 효과적 치료를 권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의료기술로 인정받은 하이푸가 계속 압박을 받으면 후학 양성은 더 힘들 것이며, 선진 치료법이 나왔을 때 비급여라는 이유로 통제가 가해지면 한국 의료는 발전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밸브재건술도 위축되고 있다. 안태환 프레쉬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은 비염 치료는 증상에 따라 비밸브재건술 같은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데 규제가 심해지면 환자는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비밸브재건술은 지난 2016년 4월 신의료기술로 지정된 바 있다.
안 원장은 “비밸브재건술은 무너진 집의 지붕을 재건하는 것과 같다. 코 안쪽 공기가 지나는 통로인 비밸브가 좁아지면 코 막힘과 비염이 악화되며 숨쉬기가 힘들 수 있다”면서 “비급여 진료가 남용되는 것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과도한 규제로 인한 환자 피해를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