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제일 법을 안 지키더라’
전문가 수준으로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법망을 요리저리 피해 가는 경우가 많다는 말이 있다. 법조인, 고위 공무원, 재벌, 정치인들 이야기다. 제도의 허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책임은 피하고, 유리할 때만 법을 강조한다는 자조 섞인 말이다.
최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처신은 이 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윤 전 대통령은 특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 특검팀의 핵심 검사로 활동했고, “진실 앞에 성역은 없다”는 취지의 말을 반복하고 강조하던 사람이다.
그러던 그가 이제 특검 수사 대상이 되자 전혀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건으로 피의자 입건된 지 6개월이 넘도록 소환에 응하지 않더니, 특검이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곧 응하려 했었다”고 했다. 특검은 이에 대해 “소환 통보를 세 차례 넘게 했고, 출석 약속 후 번복한 경우도 있었다”고 반박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특검법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 판단을 요청하겠다고도 밝혔다.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특검법과 자신과 반대 진영에 선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라는 점을 들어 “정치 보복”이라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와 헌법 학계는 일관되게 “국회가 정당한 절차를 거쳐 만든 특검법은 합헌”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여야 합의 여부와 무관하게, 입법권은 국민이 부여한 국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위헌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검사 시절엔 특검의 정당성을 말했고, 대통령 재직 시절의 한국 검찰은 윤 전 대통령의 정적을 끈질기게 수사했다. 그런데 이제는 특검도, 검찰도, 사법시스템 전체를 ‘정치적 도구’라며 거부하고 있다. 법과 제도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의 지식이 국가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데 악용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수사 대상이 되면 누구나 억울할 수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임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법과 제도 안에서 다퉈야 한다. 과거에는 “정의”를 앞세워 칼을 휘두르던 그가 지금은 “보복”이라며 수사 자체를 거부하는 건 자기부정이다. 특히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의 처신이라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더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특검에 기대를 거는 건 그들의 수사 역량이 누구보다 탁월하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덮으려하고, 검찰이 외면하고 정치권이 침묵하던 사안들을 파헤치는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묻지 못했던 질문’을 이제 ‘묻고 따질 수 있다’는 그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은 늘 권력자와 측근도 죄를 지으면 수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성역 없는 수사’ ‘법 앞의 평등’을 입버릇처럼 강조해왔다. 따라서 지금 그는 체포영장을 “정치 보복”이라고 비난할 게 아니라 수사 절차에 따르고 법 앞에 평등한 국민으로서 처신을 해야 할 것이다.
권력자가 스스로든 외부의 힘에 의해서든 법 앞에 특별대우를 받지 않아야 우리 사회도 평등과 정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법 앞에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는지 깊이 질문을 던질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