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를 앞세운 인사 기조를 예고하면서,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교체가 이번 정권에서도 이어질지 주목된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 회장 가운데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내년 3월 임기를 마친다. 내년 11월엔 양종희 KB금융 회장의 임기가 만료된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2022년 3월 취임 후 올해 초 연임한 상태다. 이찬우 농협금융 회장은 지난 2월 취임했다. 금융당국의 '지배구조 모범관행'에 따라 최소 3개월 전에 CEO 선임 절차가 진행돼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12월부터 경영승계절차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정권교체기마다 금융지주의 권력 지형도는 새롭게 재편된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금융지주 수장 교체는 정권 교체기에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금융권 역시 정치적 인맥, 학맥의 연장선에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정권과 보조를 맞추는 인사는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에서도 금융당국의 압박 속에 연임을 포기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선진적인 지배 구조의 선례를 만들어줬으면 한다”며 특정 금융지주 회장의 퇴진을 압박한 바 있다.
금융권 내부에서는 이번에도 유사한 시나리오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지주 회장이 교체되면 산하 은행·카드·보험사 등 주요 자회사 CEO 인사도 줄줄이 영향이 불가피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여당이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를 세워온 만큼, 이번 정부에서도 주요 인사 교체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위기가 이전과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도 공존한다. 진옥동·임종룡, 양종희 회장은 모두 첫 임기를 마무리하는 국면이다. 과거처럼 3연임 도전자가 연이어 물러났던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윤석열 정부 당시 금융당국의 인사 개입이 순탄치 않았던 점도 참고 요인이다. 윤 정부 시절 금융당국이 금융사 대표 인선 관련 발언으로 비판받은 전례를 감안하면, 새 정부가 같은 길을 걷긴 쉽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엄격해진 제도적 장치 역시 인사 교체에 제동을 걸 전망이다. 최근 수년간 금융권은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해 다양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금감원은 2023년 말 '지배구조 모범관행'을 발표하고, 업계와 논의해 CEO 선임 절차의 체계화를 유도해 왔다. 은행들은 모범관행을 자사 특성에 맞게 내규에 반영하고, 관련 조직 정비와 함께 자율 이행에 나서고 있다. 금감원은 모범관행을 통한 △경영승계 절차 체계화 △사외이사 평가의 객관성 강화 △사외이사 지원조직 구축 △감독당국과의 정례 간담회 등을 성과로 제시했다.
이뿐만 아니라 당국은 금융지주·은행 수장의 ‘셀프 연임’을 막고, 이사회 독립성과 주주 통제 장치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도 추진하고 있다. CEO 장기 연임 시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적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CEO가 세 번째 연임에 도전할 경우,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찬성을 요구하는 ‘특별결의’ 문턱을 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주주 감시를 통한 장기 집권 방지 장치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사회도 개편 대상이다. 이사회 독립성 확보를 위해 시차임기제, 임기 차등 부여, 역량진단표(BSM) 연계 평가 등 적정임기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CEO·사외이사 평가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기관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고 있는 만큼 정부의 개입 필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 정부’를 표방하는 점도 금융권의 기대 요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취임선서에서 “낡은 이념은 이제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자”고 선언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 정부가 될 것”이라며 “통제하고 관리하는 정부가 아니라 지원하고 격려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재명 정부가 실용을 강조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처럼 금융사 인사에 거리를 두는 방식으로 관치 논란을 피하려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