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10일 하반기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내수 부진 우려가 여전하지만, 수도권 주택가격 급등·가계부채 증가세 등을 고려해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기준금리 2.50% 동결…가계부채에 ‘숨 고르기’
한은은 이날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하하며 금리 인하 사이클에 돌입했다. 이후 11월에도 연속 인하를 단행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징검다리 금리 인하’에 나서며 경기부양과 금융안정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데 주력해왔다.
이번 동결 결정에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날 발표된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한은은 “수도권 주택가격 오름세 및 가계부채 증가세가 크게 확대됐고, 최근 강화된 가계부채 대책의 영향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23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43% 뛰었다. 2018년 9월 둘째 주(0.45%) 이후 6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이다. 주택 매매 수요를 뒷받침하는 가계대출도 6조5000억원 급증했다. 이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이 6조2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7일 서울 등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최대 6억원으로 제한하는 고강도 대출 규제 방안을 발표했다. 이달부터는 총대출 한도를 낮추는 스트레스 DSR 3단계 규제도 시행됐다. 한은은 이 같은 대출 규제의 효과를 지켜보며 당분간 시장 안정을 우선하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정부 기조에 발맞춰 가계부채 급등세 억제에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이창용 총재 “집값 상승세, 지난해 8월보다 빠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오름세가 “지난해 8월보다 훨씬 빠른 속도”라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해에는 ‘실기론’에도 금리 인하를 한번 쉬고 (집값 상승세가) 잡혔구나 생각했다”며 “이번에는 해피엔딩이 금방 올지 잘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이 총재는 거듭 집값 억제가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주택 거래량 등의 선행지표를 통해서 가계부채 증가세 둔화를 예상할 수 있지만 가격이 계속 가파르게 오를 경우 규제에도 대출 수요가 꾸준히 늘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총재는 “수도권 주택 가격상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대심리를 안정시키고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게 중요한 정책 우선순위”라면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수도권 지역에서 번져나가면 젊은층 절망감부터 시작해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6·27 부동산 대출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총재는 “정부가 과감한 정책을 발표한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올바른 방향이라 생각한다”며 “한은과 정부가 공조하면서 부동산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고 봐주면 좋겠다”고 했다. 다만 부동산 가격 상승이 당장 8월에 해결될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전망하며 “대출 규제로 충분치 않으면 여러 (추가 정책을) 공급이든 수요든 더 해야 한다. 정부가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8월 인하, 변수는 6·27 규제 효과·美관세 협상
시장에서는 하반기 추가 인하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진한 국내 경기와 대외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 변수로는 다음 달 1일 예정된 한미 관세 협상이 꼽힌다. 이 총재는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과 미국의 무역협상 결과에 따라 수출과 성장경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면서 “한국에 부과될 상호관세 및 반도체 등에 대한 품목별 관세 수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중국 등 경쟁국과 베트남·멕시코·캐나다 등 주요 해외 생산기지에 대한 관세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특히 이 총재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관세 협상이 결렬되고, 수도권 부동산 가격 상승세마저 꺾이지 않는 상황을 거론했다. 이 경우 성장과 금융안정 사이에서 어려운 판단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한은은 다음 달 국내외 경제 여건 변화를 반영해 한국경제 성장률 수정 전망치를 제시할 예정이다.
향후 금통위는 대출 규제의 효과, 추가경정예산(추경), 관세 협상 결과,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 등을 지켜보며 8월 인하 가능성을 저울질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금리 인하 기조를 유지하되, 시기와 속도는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대내외 정책 여건과 이에 따른 물가 금융안정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 추가 인하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6명 중 4명이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다”며 “다만 가계부채, 부동산 가격, 미국의 관세 정책 등 변수들이 많아 시점을 단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이어 “나머지 2명은 금융안정을 위한 신중한 접근과 미 금리와의 격차 확대 영향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