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 전부터 훅 더워졌는데, 그늘이 없으니 숨이 턱턱 막혀요.”
서울 전역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지난 4일 오후 3시.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 안모(49·남)씨는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땀을 훔쳤다. 작업복과 안전 장비를 착용했지만, 열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2년째 공사장 차량 통제를 해온 그는 “강도가 센 일은 아니지만, 햇볕 아래에서는 다 똑같이 버겁다”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물을 들이켰다.
체감온도가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 속에서도 타워크레인, 고소 작업을 하는 작업자 등은 변변한 그늘 하나 없이 고공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산업 현장에는 ‘쉬라’는 말도, ‘얼마나 쉬어야 한다’는 기준도 없다. 이처럼 폭염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기준 삼아 ‘언제쯤 쉬어도 될지’를 눈치로 가늠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준마저 명확하지 않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쿠팡 물류센터와 택배 상하차장 내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실내라고 해서 더 나은 환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냉방 설비는 부족하고, 체감온도는 40도에 육박한다. 빠른 회전율을 요구받는 구조 속에서 휴식 시간은 오히려 더 줄어든다. 조리실은 최고 50도까지 올라가는 고열 환경에도 냉방 설비가 전무한 경우가 많다. 환경미화 노동자들도 밀폐된 건물 안에서 환기장치 없이 일하고 있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은 결국 비극적인 사고로도 이어졌다. 최근 경북의 한 공사현장에서는 폭염 속 작업을 하던 외국인 노동자가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관계 당국은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는 물론, 온열질환 예방 조치가 적절히 이뤄졌는지도 조사 중이다.
무더위에 지친 현장, 제도는 아직 공백
고용노동부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2시간 이내 20분 이상 휴식’을 보장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규칙 개정을 추진해 왔다.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폭염이 ‘근로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유해 요인’으로 명시되면서, 이에 따른 사업주의 보건 조치 의무를 구체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고용부는 이를 반영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일부개정령안을 마련했고, 당초 이달 1일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규제개혁위원회는 시행 두 달여를 앞두고 해당 개정안에 대해 재검토를 권고했다. 핵심 쟁점은 새롭게 신설될 예정이던 제566조 제3항이었다. 이 조항은 ‘체감온도 33도 이상인 작업 장소에서 폭염 작업을 하는 경우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개위는 해당 조항이 중소·영세 사업장에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이미 포함된 ‘폭염 작업 시 적절한 휴식 부과 의무’(제560조 제2항)와 별도로 명문화할 필요성도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휴식 시간을 법령으로 규정한 해외 사례가 드물다는 점 역시 재검토 이유 중 하나였다.
정부는 규개위 권고를 수용할지, 재심사를 요청할지를 두고 내부 검토를 이어왔다. 그러던 중 폭염 속 노동자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중대재해 우려가 커지자, 지난 8일 고용부는 해당 조항에 대해 공식적으로 재심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행 지연으로 인해 현장에는 제도적 공백이 발생한 상태다. 정부는 조속한 재입법예고를 준비 중이지만, 본격적인 무더위가 닥친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눈치 휴식’에 의존하고 있다.
같은 무더위 아래서도 현장의 대응은 제각각이다. 노동자 김모(50·남)씨는 “날씨가 무덥긴 하지만 다들 어떻게든 버티고 있다”며 “적당히 눈치 살피며 알아서 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면 노동자 김모(54·남)씨는 “10년째 목수 일을 하고 있는데 올해는 그나마 많이 쉬는 편”이라며 “회사 지침상 1시간에 20분씩은 무조건 쉬고, 기온이 35도 넘으면 일을 아예 안 시키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휴식 시간이 해마다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긴 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현장마다 ‘눈치 휴식’과 ‘제도적 휴식’ 사이의 격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필요한 보호냐, 과한 개입이냐…남은 과제는
폭염 속 노동자 보호 대책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일부는 영세사업장일수록 강제 휴식 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반면, 일률적 규제가 현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다만 노동자 보호의 필요성과 현장 적용 가능성 사이에서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가 있다.
규개위 민간위원인 이인호 중앙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휴식 시간을) 일률적으로 규제할 수는 없다”며 “근무 환경이 천차만별인데 일률적으로 (개정안을 적용)하면 규제가 너무 강하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일률적 적용은 현장 상황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라는 시각이다. 이 교수는 “예컨대 조선업의 경우 중간에 쉰다고 가정했을 때 (휴식을 위해) 이동하는 시간이 발생한다”며 “(다양한 업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법적 규정은 필요하지만, 형사처벌까지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적으로 규정하되 처벌 규정은 두지 말아야 한다”며 “외국은 형사 처벌이 수반되지 않는 방식으로 규정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교수는 “처벌 규정이 없더라도 강제할 방법은 있다”며 “법적 규정으로 들어가면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주의 의무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동자 보호를 위해서는 규제가 필요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혹서에 노출된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개정안 취지를 외면한 채, 일률적 규제로 오해한 규개위의 판단은 섣부른 것”이라며 “중소·영세 사업장이야말로 폭염에 가장 취약한데도, 정작 보호 대상이 아닌 규제 완화 대상으로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규제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하다”며 “오히려 정부가 일정 기간 비용을 지원해 제도가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람직하며, 기후위기 시대에 노동 안전을 위한 법적 장치 강화는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