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통과, 고뇌하는 금융권… “세부 기준 필요”

노란봉투법 통과, 고뇌하는 금융권… “세부 기준 필요”

기사승인 2025-08-26 11:30:04 업데이트 2025-08-26 14:01:54
24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개정법률안(노란봉투법)’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금융권의 시름이 한층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사용자 범위를 원청까지 확대하는 조항이 콜센터 운영 등의 업무를 하청업체에 맡겨 왔던 금융권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이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환경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26일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24일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표결은 재석 의원 186명 가운데 찬성 183명, 반대 3명으로 가결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진보 성향 정당 의원들은 표결에 참여해 찬성표를 던졌다. 법안을 ‘경제 악법’이라고 맹비판한 국민의힘은 투표를 거부했다. 개혁신당 소속 의원 3명(이준석·천하람·이주영)은 반대표를 던졌다. 노란봉투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가진 후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노란봉투법, ‘사용자성 확대’ 골자

노란봉투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먼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한다. 지금까지는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만 사용자로 보았다면, 앞으로는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무환경에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원청도 사용자에 포함된다. 따라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는 노동조합 설립 후 원청에 근무조건 개선 등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금융사들은 자회사나 용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어 콜센터 운영, 전산시스템 관리, 보안유지 등을 맡겨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은행 콜센터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입수한 금융감독원 '콜센터 인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말 기준 5대(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은행의 상담원 수는 5209명을 기록했다. 자회사를 제외 용업업체를 통한 간접고용 상담원 수는 공식적으로 잡히지 않아 실제 인원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앞으로 노동조합 결성을 통해 원청인 은행과 직접 교섭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의 파업 등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제한 및 면제된다. 기존에는 사용자가 노조나 조합원을 상대로 손해액을 전부 배상 청구할 수 있었다면 개정 이후에는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입증해야만 손해 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하청업체 노동자의 파업으로 은행이 피해를 입었다면, 은행은 A조합원 30%, B조합원 20%, C조합원 50%와 같이 개별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만 한다. 현실적으로 사용자가 조합원의 책임 비율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용자가 개별 조합원의 쟁의행위 기여 비율을 산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손해액이 특정되지 않으면 배상 책임 자체를 묻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사용자가 책임 비율을 입증한다고 해도 노조와 조합원은 법원에 감액을 청구해 배상 책임을 줄일 수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로 노동권이 위축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봉투법, 하청 노동자에게 독 될까, 득 될까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금융권 노사 협상 테이블이 노동계에 유리하게 기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노조는 현재도 입김이 세다”며 “노란봉투법 의결 이후 더 막강한 교섭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금융노조는 주 4.5일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다음달 25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게다가 사용자 범위 확대 조항은 금융권에 직접적인 부담을 안길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하청업체 직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 구조 문제 해결을 호소해 왔다. 이번 개정으로 이들이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되면서 금융사의 노사관계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동안 하청업체와 교섭은 활발히 이루어져 왔지만, 개정법으로 원청 교섭권이 새롭게 인정된 만큼 어떤 파장이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에 대해서는 “과연 노동자를 위한 법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처음에는 노동자의 처우 개선에 기여할지 몰라도, 길게 봤을 때 기업의 비용 부담을 늘려 오히려 노동력 대체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 시행 전까지 세부 적용 기준과 절차에 대한 가이드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지순 교수 역시 “노란봉투법은 하청 근로자들의 고용을 불안하게 만드는 괴물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박 교수는 “예컨대 콜센터 직원이 파업을 하면 단기적으로는 문제를 바로잡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들이 리스크 및 비용 감축을 위해 하청 계약을 축소하고 AI나 챗봇 등으로 업무를 대체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법 시행으로 원청 대상 교섭권이 인정된 만큼, 구체적인 매뉴얼 마련이 필요하다”며 “원청의 실질적 지배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 교섭 절차, 불법 쟁의행위 허용 범위 등 세부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정립하는 후속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로 든든한콜센터지부관계자는 “노란봉투법을 오랜 기간 기다려왔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법 시행까지 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는 만큼, 그동안 원청이 결정하는 사안에 먼저 교섭을 요청해서 법이 제대로 안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란봉투법이 오히려 노동력 대체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래서 노란봉투법이 필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원청과 교섭하면서 노동자들이 함부로 해고되지 않도록 합당한 요구를 제도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정덕영 기자
deok0924@kukinews.com
정덕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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