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붙’ 강요하는 원작 팬, 인기 IP 발목 [취재진담]

‘복붙’ 강요하는 원작 팬, 인기 IP 발목 [취재진담]

기사승인 2025-08-22 11:01:55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한때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던 메가 IP(지식재산권)가 여러모로 길러내기 까다로운 자식이 됐다. 과거 대형 팬덤을 보유한 IP가 원작인 콘텐츠를 공개하기 전부터 긍정적 관심을 받고, 해당 팬덤이 잠재적 소비자층으로 여겨졌던 것과 확연히 다르다. 오히려 원작 팬의 등쌀에 이리저리 치이는 양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IP 쟁탈전은 계속되고 있지만, 팬층이 견고한 IP의 영상화 작업만큼은 이제 기대보다 우려를 받는 분위기다.

상대적으로 호흡이 짧은 영화나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리즈는 각색이 필수인 탓에 부담은 더 크다. 여기에 원작의 세계관이 방대할수록 고민은 배가 된다.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 모든 이야기를 담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지만, 일부 원작 팬은 그 판타지가 현실이 돼야 한다고 믿는 탓이다.

‘나 홀로 신념’이면 다행이다. 예고편만 보고 작품 전체 완성도를 재단하고, 실제 감상평인 양 온라인에 배설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정당한 비판이 아닌 원색적 비난에 가깝지만, 이를 가려서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영화산업이 흥하고 있다면 하나의 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기회비용 상승으로 입소문이 흥망을 가르는 요즘에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이에 기인한 실제 피해도 있다. 원작을 둔 작품들이라면 빠짐없이 설왕설래가 이어졌는데, 올해 개봉작 중에서는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을 예로 들 수 있다. 2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전지적 독자 시점’의 누적 관객 수는 106만119명이다. 손익분기점 약 600만명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이러한 성적표를 받아 들게 된 요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업계 관계자 대다수는 원작 팬덤으로 인해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무엇보다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개봉 전부터 대형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에서 도 넘은 악평이 쏟아지면서, 기존 웹소설을 읽지 않은 예비 관객마저 기대를 거뒀기 때문이다. 원작 팬덤은 여전히 ‘원작 훼손’을 내세워 맹목적 비난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이 핵심적이라고 여기는 몇몇 설정이 수정되거나 삭제됐다는 것이 골자다. 

원작 팬이라면 당연히 아쉬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훼손’이라는 지적은 비약이다. 제작사는 원작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확보한 IP를 ‘가공’한 것이다. 원작자 참여를 배제했거나 원작자가 원치 않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지 않은 이상 훼손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어찌 됐든 이를 이해할 의지가 없는 몇몇이 남긴 악평의 영향으로 시즌2를 보게 될 가능성은 현저히 줄었다. 누구보다 원작 훼손에 민감할 원작자도 이같은 결과를 바랐을지 묻고 싶다. 

국내 팬덤의 주장이 절대선일 리도 없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둔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도 갖가지 이유로 원성을 샀다. 하지만 정작 해외에서는 호평이 나왔다. 공개 2주 차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시리즈(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는 코어 팬에게는 불호일 수 있지만, 글로벌 플랫폼 특성상 타깃층을 넓혀 각색한 서사와 액션이 유효했음을 방증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는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성패가 좌우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 피해는 제작사나 투자자에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는 대중 역시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잃게 된다. 특히 시공간 제약이 없는 웹툰 특성상 고유의 세계관을 지닌 판타지물이 많은데, 가뜩이나 위축된 시장 속 이들의 영상화는 투자 단계부터 엎어질 위기를 겪는다.

업계 관계자들은 “원작을 100% 복사해 붙여 넣는 식의 영상화가 바람직한 방식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창작자에게 허락된 해석과 재구성의 영역을 훼손으로 치부한다면, 독창적 콘텐츠는 사라지고 결국 복제품만 남게 될지 모른다. 물론 원작 팬은 물론 더 넓은 타깃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정교한 접근이 반드시 전제돼야 할 것이다.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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