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약자 항공 이동권, 민간 자율 아닌 정부 함께 나서야” [불편한 공항③] 

“교통약자 항공 이동권, 민간 자율 아닌 정부 함께 나서야” [불편한 공항③] 

비행기는 하늘길을 열었지만, 교통약자에게는 여전히 닫혀 있다. 국내 공항 10곳 중 8곳은 리프트카조차 없고, 그나마 있는 탑승교도 언제든 ‘미배정’될 수 있다. 해외 항공사들이 휠체어 좌석 도입까지 논의하는 사이, 한국은 책임을 민간에만 떠넘기며 제자리걸음을 반복한다. 쿠키뉴스는 ‘불편한 공항’ 기획을 통해 교통약자가 마주한 불편의 현장, 해외와의 격차, 그리고 제도적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주]

기사승인 2025-08-23 15:30:04 업데이트 2025-08-23 15:59:45
이수미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개인대의원이 기내용 휠체어로 이동하는 모습. 사진=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항공 이동권이 ‘민간 자율’에 맡겨지면서 교통약자는 여전히 비행기 탑승 과정에서 차별과 불편을 겪고 있다. 시설은 부족하고, 제도는 책임 주체를 명확히 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는 것이다. 앞선 기사 “업혀야 비행기 탑승” 공항 80% 리프트카 0대 [불편한 공항①] , ‘차별 없는 비행’ 향하는 美 항공사, 갈 길 먼 韓 항공사 [불편한 공항②]에서 확인했듯 현실은 열악하고 해외와의 격차는 크다. 문제는 이처럼 책임 공백 속에서 피해만 누적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 자율’에 맡긴 하늘길…이동권 책임은 회피

이런 구조적 공백은 실제 현장에서 장애인을 더욱 고립시킨다. 지난해 7월 한 중증 장애인이 탑승 설비 지원을 받지 못해 계단을 기어 내려와야 했던 사건은 그 단적인 사례다. 당시 항공사와 공항, 국토부는 서로 책임을 미루며 문제 해결 대신 공방만 이어갔다.

현행 교통약자법상 항공기에는 휠체어 탑승 설비가 의무 시설로 규정돼 있지 않다. 결국 항공 이동권은 민간 자율에 맡겨져 책임 주체가 불분명한 상태다.

반면 미국의 경우 교통약자가 항공기 이용에 도움을 요청하면 항공사가 휠체어 승강 설비 등을 의무적으로 제공하고 있는 등 책임 주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항공운송접근법(ACAA)을 통해 △비행 편당 장애인 승객 수 제한 금지 △장애인에게 특정 좌석 강요 금지 △2열 복도를 가진 항공기에 장애인용 화장실 구비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부실한 항공 이동권 보장 체계로 인한 권익 침해 문제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지난 2023년 서울 용산구 서울역 공항철도 플랫폼에서 ‘장애인 비행기 이동권 보장’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은 1990년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서 항공기에서의 이동권을 의무적으로 보장해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제대로 된 장애인 항공 이동을 위한 매뉴얼이 부재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지난해 8월 와상장애인(중증으로 누워서만 지내는 장애인) 이건창씨 등 장애별금지추진연대는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애 특성에 따라 특수 형태의 좌석을 요청했지만 추가 비용을 이유로 탑승을 거부한 행위는 명백한 차별 행위”라며 “이는 항공 이동권 자체를 박탈하고 비행기 탑승을 거부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8일 열린 국토부장관 김윤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진보당 윤종오 의원이 김 후보자에 장애인 이동권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캡처 

항공 이동권 보장…“‘정부‧공항‧항공사 협력해야”

지난달 28일 열린 국토교통부 장관 김윤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도 관련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당시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와상장애인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비장애인보다 6배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며 국내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이 언제든지 편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느냐”라고 당시 김윤덕 후보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김 후보자는 “동의한다. 전장연과 만나서 그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교통약자들은 항공 이동권 보장 체계가 강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민간 자율 구조에서 정부와 공공기관 등이 협력하는 구조로 변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뇌병변 장애인 김도경씨(20대‧남)와 지체장애인 임경미씨(50대‧여), 이수진씨(40대‧여)는 “여러 기관이 함께 협력해 교통약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을 수 있길 바란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홍서윤 한국장애인관광협회 전 대표는 “미국의 경우 교통약자의 항공 이동권과 관련한 법률이 매우 구체적으로 정리돼 있다”며 “반면 우리나라는 항공 이동권을 민간 자율로 맡기고 있어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함께 항공 이동권 보장에 나서는 해외 사례처럼 한국 정부도 교통약자들의 권리에 대한 법적‧제도적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이제는 민간 자율이 아닌 정부와 공항, 항공사 모두가 함께 협력 관계를 형성해 교통약자들의 항공 이동권 보장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와 관련 국토부 관계자는 “교통약자를 위한 이동편의시설 기준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지속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지자체와 관련 기관 등과 관리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항운영사와 항공사가 장비공유제를 활용해 리프트카 등 다양한 이동 장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송민재 기자
vitamin@kukinews.com
송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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