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불리 ‘얼굴’ 평가하지 마세요 [쿡리뷰]

섣불리 ‘얼굴’ 평가하지 마세요 [쿡리뷰]

기사승인 2025-09-11 06:00:23
영화 ‘얼굴’ 포스터.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도 많지 않고, 서사도 요약하자면 금방이다. 그런데 어쩐지 아주 복잡한 이야기를 본 것 같은 여운이 남는다. 실제 ‘얼굴’처럼 사전적 정의를 8개쯤 지닌 다의어를 마주한 것만 같다. 작품의 참뜻을 속단할 수 없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점에서도 그렇다. 영화 ‘얼굴’(감독 연상호)의 첫인상이다.

‘얼굴’은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시각장애인 전각 장인 임영규(권해효)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40년 전 실종된 줄 알았던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백골 시신을 발견하고 그 죽음 뒤 진실을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제목이 곧 내용이다. ‘얼굴’은 정영희의 얼굴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 속 현재에 있는 주요 인물들은 정영희의 얼굴을 모른다. 임영규·임동환 부자, 임영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인 PD 김수진(한지현) 모두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부차적 인물들은 과거 그의 얼굴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고인이 된 그를 두고 ‘못생겼다’며 혀를 내두른다. 그리고 작품은 ‘괴물 같다’던 그 얼굴을 임동환도 관객도 알게 되는 동시에 끝을 맺는다.

정영희는 가족에게도 백주상(임성재)에게도 ‘괴물 같은 X’이다. 아버지의 불륜, 백주상의 성범죄 등 불편한 진실을 방관하지 않은 그는 그때 그 시절 ‘괴물 같은 X’이어야만 했다. 임영규조차 정영희에게 “제발 가만히 있어”라고 하지만, 정영희는 “당신은 나를 못생기게만 보지 않으니까” 용기를 얻었다고 받아친다. 여기까지 다다르면 ‘메시지로 이길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말이 떠오른다. 그의 얼굴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기에는 찝찝함이 가시지 않는다.

영화 ‘얼굴’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얼굴’ 스틸.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영희가 ‘나쁜 사람이 착한 척을 하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묻는 대목 역시 작품의 메시지를 관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질문을 던지는 정영희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 몫의 유산을 챙기기 위해 장례식장을 찾은 이모들의 모습에 참담해하던 임동환은 아버지의 죄를 묻어버리고, 정작 정영희를 살해한 줄 알았던 백주상은 범인이 아니었으며, 김수진은 특종에 눈이 멀어 취재 방향을 틀지만 이를 정의로 포장하려 든다. 이처럼 의도적이고 현실적인 이중성은, 사람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지, 더 나아가 진짜 얼굴이 존재는 하는 건지 거듭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핵심은 임영규의 아이러니다. 그는 자신의 전각을 아름답다고 첫 번째로 말한 사람이 정영희라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은 채, 정영희가 저항하며 남긴 흉터가 있는 손으로 타인의 추앙을 받는 도장을 만들어왔다. 그러면서 못 보는 사람은 아름다움을 모를 것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자신은 아름다움도 추함도 다 알아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살인자가 아니라고 우기는 그의 옷깃에는 결코 아름답지 않은 보풀이 가득 일어났고, 추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부인의 얼굴은 지극히 평범하다. 그 무엇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그를 보고 있자면 욕지기가 치민다. 일평생 폭력에 시달렸다고 호소하는 그가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 역시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일 터다.

끝까지 혼란스럽고 메스껍다. 악평이 아니다. 그만큼 몰입도가 상당하다. 1인 2역을 맡은 박정민, 시각장애인으로 분한 권해효의 걸출한 연기, 한 땀 한 땀 수놓은 듯한 연상호 감독의 연출이 주효했다는 의미다. 심지어 예산 2억원, 스태프 20명, 촬영 기간 3주로 완성한 독립영화 규모의 작품인데, 그 ‘얼굴’값을 한참 치르고도 남을 질문거리를 안긴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도파민 대신 사색에 잠기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3분.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심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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