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의 한 3층짜리 빈집이 20년 넘게 방치되다가 붕괴됐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추가 붕괴 가능성에 대비해 주민 11명이 긴급 대피했다. 서울에서도 집중호우로 도로 위 축대가 무너져 인근 주택이 매몰·파손됐고, 광주에서는 낡은 빈집이 무너지며 옆집까지 덮쳤다.(국립재난안전연구원 잠재재난위험 분석보고서 사례 인용)
이처럼 최근 2년 사이 도시 경사지 빈집 붕괴는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잠재 재난’으로 떠오르고 있다. 빈집 증가는 인구 감소와 집중호우 등 기후재난이 심화되면서 도시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도시지역 빈집에 대한 안전점검를 주기 단축하고 센서 및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를 활용한 실시간 모니터링과 선제적 안전관리 체계 도입, 붕괴 위험 시 즉시 대피·통제를 가능하게 하는 긴급 대응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집, 66만호 돌파…43%는 구조 불량
23일 행정안전부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전국 빈집은 약 66만호로, 매년 4.3%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서울(약 80호/㎢), 부산(약 70호/㎢)은 빈집 밀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다.
도심 단독주택 빈집 안전 등급 조사에서는 △1등급(양호) 21% △2등급(일반) 36% △3등급(불량) 24% △4등급(철거 대상) 19%로 나타났다. 빈집 10채 중 4채는 구조적으로 불량하거나 붕괴 위험이 큰 셈이다. 일부는 이미 2019년 철거 판정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철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경사지에 몰린 주거지다. 1990년대까지 부족한 도심 주거지를 확보하기 위해 산비탈을 깎고 다져 좁은 공간에 소규모 주택 단지가 들어섰다. 이런 지역은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토사가 쓸려나가면서 옹벽, 축대, 담장 등 경사면 구조물이 한꺼번에 붕괴 위험에 노출된다.
실제 지난 40여 년간 태풍의 최대 강도는 약 31% 증가했고, 시간당 30mm 이상 폭우가 내리는 날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재난안전연구원은 “강한 호우는 해빙기나 폭염보다도 건물 수명을 단축시키는 가장 주요한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빈집 정책, 왜 현장 못 따라가나
정부는 ‘빈집 및 소규모 주택 정비에관한 특례법’에 따라 실태조사와 정비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실태조사 주기(5년)가 너무 길고 △철거 지연 △소유주 부담으로 자발적 철거 곤란 △배상 책임 공백 등이 반복된다.
이로 인해 철거 대상 빈집이 계속 방치되고, 주민들은 붕괴 전조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서울, 부산 사례처럼 큰 사고가 나야 현장 통제가 이뤄지는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5월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범정부 빈집 관리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차원의 빈집 관리 방향을 담은 첫 종합 대책으로 △전국 단위 관리체계 구축 △정비·활용 및 안전확보 지원 △지자체 정비 역량 강화 △민간 자발적 정비·활용 유도 등 4대 전략 15개 과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종합계획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우선 실시간 모니터링과 선제적 안전조치 체계가 부족하다. 경사지 빈집 붕괴는 균열이나 변형 같은 전조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감지·대응할 센서나 IoT 기반 시스템, 주기적 안전점검 강화 방안은 충분히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이번 계획에는 정비·활용과 세제 인센티브에 비해 안전 대응 부분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담겼다. 경사지 빈집에 붕괴 위험이 감지되더라도 즉각적인 대피 명령과 출입 통제를 내릴 수 있는 현장 매뉴얼이나 지자체·소방·경찰의 협업 체계, 법적 책임 소재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난안전연구원과 전문가들은 안전 점검 주기를 5년에서 2~3년으로 단축하고 위험 빈집 밀집 지역에는 스마트센서·AI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 주민 대상 조기경보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붕괴 위험 지역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선제적으로 대피·통제를 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피해 발생 시 국가·지자체·소유주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원일 대림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빈집은 단순한 흉물이 아니라, 기후재난과 결합해 도시 안전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라면서 “안전점검을 5년마다 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센서, AIoT 기반 모니터링을 통해 실시간으로 위험 신호를 포착하고 주민에게 경보를 전달하는 체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세종=김태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