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료만 자식에게’ 고령화 시대 떠오르는 신탁…보험사도 주목

‘임대료만 자식에게’ 고령화 시대 떠오르는 신탁…보험사도 주목

기사승인 2025-09-26 18:10:05
보험연구원이 26일 ‘보험산업과 신탁’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고 신탁의 현황과 활용 사례를 논의했다. 김미현 기자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금전·증권·부동산 등 다양한 자산을 금융사에 맡겨 운용하는 ‘종합재산신탁’이 주목받고 있다. 상속·증여·치매 대비 등 고령화 시대의 복합적 수요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보험사들도 단순한 보험금 지급 역할에서 벗어나 고객의 생애 설계와 자산 관리까지 포괄하기 위해 신탁 시장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다만 법적·제도적 제약이 여전히 걸림돌로 지적되면서, 신탁 가능 자산의 범위를 넓히고 세제 혜택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계완 교보생명 종합자산관리팀장은 26일 서울 여의도 보험연구원에서 열린 ‘보험산업과 신탁’ 세미나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훨씬 빠른 만큼, 60세 이상 시니어층의 재산 관리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며 “신탁은 고령층의 재산 관리와 지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고령사회 도달이 17년, 초고령사회 도달은 9년이나 빠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고령자의 자산 관리 및 치매 등 인지 능력 저하에 대한 사전적 대응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보험은 전통적으로 생애 주기 전반에 걸쳐 다양한 위험을 보장하는 핵심 수단이다. 그러나 일시금 지급 구조로 인해 고령자의 자산이 과소비되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이를 보완할 수단으로 종합재산신탁이 떠오르고 있다. 신탁은 수혜자(가족 등)에게 합리적으로 소득을 배분하고,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사후 분배 규정까지 세밀하게 설정할 수 있어 보험금 관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예를들어 치매 초기 증상이 있는 고령자는 후견신탁을 통해 사전에 재산 관리인을 지정하고, 중증 치매 이후에는 지정된 가족이 의료비와 요양비를 집행할 수 있다. 수탁사가 재산을 안전하게 관리하며, 사망 시에는 상속 절차까지 이어갈 수 있다. 또 유언대용신탁은 까다로운 법적 요건의 유언장을 대신해 상속 과정에서 가족 간 갈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김 팀장은 “상가 건물 120억원을 보유한 70대 고객은 사후에도 건물이 매각되지 않고 유지되길 원했다”며 “경제관념이 부족한 아들에게는 임대료 수익만 지급하고, 아내와 딸이 동의하면 소유권을 이전하도록 설계한 사례도 있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보험금청구권 신탁도 도입됐다. 보험금 지급 시 신탁사가 이를 대신 수령·관리하는 방식으로, 예컨대 이혼한 40대 어머니가 9살 자녀의 양육비와 생활비를 걱정할 경우 사망보험금을 신탁사가 관리해 매월 생활비를 지급하고, 자녀가 성인이 되면 잔여 재산을 지급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신탁은 매력적인 수단으로 꼽힌다. 고령 인구 급증으로 향후 보험금 지급에 따른 재무적 부담이 커지고 있지만, 신탁을 활용하면 자산 운용 수익(수수료)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종합재산신탁 라이선스를 보유한 보험사는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미래에셋생명·흥국생명 등 5곳으로, 전체 시장의 약 60%를 차지한다. 이들 회사는 모두 보험금청구권신탁 상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올 1분기 기준 881조9859억원에 달하는 사망보험금을 기반으로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제도적 걸림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업계는 투자 위험이 없는 ‘관리형 신탁’조차 자본시장법의 포괄 규제를 받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한다. 김계완 팀장은 “자본시장법은 관리형 신탁을 금융투자상품이 아니라고 보지만 예외 규정이 불명확해 혼란이 크다”며 “위험이 없는 관리형 신탁은 신탁법으로만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법 개정이 어렵다면 자본시장법 내 세부 지침이라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규동 보험연구원 연구위원도 “신탁은 상속 재산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만큼 세제 혜택이 필요하다”며 “특히 요양 비용 등 특정 경비를 신탁 재산으로 사용할 때 소득공제를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규 하나은행 신탁부 팀장은 “현재는 신탁 목적에 따른 규제 차별화가 없어 시장 확대에 제약이 크다”며 “일본처럼 가족신탁에 대해 금융상품과는 별도의 규제를 도입한다면 저변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해보험업계도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 현재 손보사 가운데 삼성화재와 KB손보만 금전신탁 인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가 절차의 복잡성과 비용 부담이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꼽힌다. 박민선 손해보험협회 팀장은 “보험 연계 상품이나 특정 신탁대상 중심의 신탁업은 인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나아가 보험업법상 부수업무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김미현 기자
mhyunk@kukinews.com
김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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