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호품도 오고, 일손도 보태주니 한결 나아졌어요. 참 고마운 일이죠.”
경북 안동 길안면에서 농사를 짓는 정모씨는 28일 이같이 말했다. 이 지역은 지난 3월21일부터 발생한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다. 이번 산불은 안동을 비롯해 청송, 영양, 영덕 등 경북 농촌 지역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화마는 농민들의 삶 자체를 앗아갔다. 누군가는 땀 흘려 지은 농산물을,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었다. 농가 생계 기반인 비닐하우스와 농기계마저 잿더미로 변했다.
전례 없는 피해 앞에서 가장 먼저 나선 건 농협이다. 평소 농민들 사이에서 ‘애증의 조직’으로 불리며 복합적인 평가를 받아온 농협이지만, 대형 재해 앞에서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산불 확산 직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하고, 정부의 재해 대응 3단계 발령에 맞춰 전국 각지 농협이 총력 대응했다.
농협은 현장에 세탁차 3대, 살수차와 방역차, 중장비 차량 40대를 급파했다. 즉석밥·담요·컵라면 등이 담긴 구호키트 700박스도 긴급 수송됐다. 농협 임직원과 고향주부모임 등 자원봉사자 4000여명은 급식·세탁·정리 작업 등을 도우며, 피해 지역의 생활 안정에 힘을 보탰다.
산불 피해 지역 안동 임하면에 거주하는 농민 김도영씨도 도움의 손길을 체감했다. 김씨는 “구호물품이 계속 들어와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며 “다들 바쁠 텐데 이렇게 마음 내서 도와주는 게 참 고맙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농협은 이번 복구를 긴급구호→생활지원→영농복구→금융지원이라는 4단계 체계로 접근한다. 최종 목표는 피해 지역의 영농 정상화다.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농업인들이 큰 실의에 빠진 상황이 매우 안타깝다”며 “농협은 이재민과 농업인들이 하루빨리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현재까지 농협이 투입한 재해자금은 2000억원 규모다. 해당 자금은 농기계 수리, 영농자재 반값 지원, 농작업 대행 등 피해 현장의 수요에 맞춰 쓰이고 있다. 아울러 잔해 제거 작업 등에 일손을 보태며 영농 재개도 돕고 있다.
금융 지원도 병행됐다. 조합원 가구에는 최대 3000만원의 무이자 생활자금이 제공된다. 신규 대출 시 카드대금과 보험료 납부를 유예해 주는 금융 지원책도 마련됐다. NH농협은행은 지자체와 협약을 맺고 1%대 18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에 나섰다.
정부 역시 지원에 힘쓰고 있다. 1조4000억원 규모의 신규 예산을 긴급 편성하고, 재해·재난대책비를 1조5000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이재민 지원 전담기구도 설치해 구체적인 실행계획 수립, 이행 사항을 지속 관리하고 있다.
다만 피해 농민들은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농민 김 씨는 “비닐하우스도 농기계도 다 타버려서 당장 생계가 막막하다”며 “농업은 단기 지원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이기에 농산물 보상과 장비 복구 등 장기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