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 절반 이상이 장기적 울분 상태에 시달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히 30대와 월 소득 200만원 이하 저소득층에서 심한 우울과 울분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BK21 건강재난 통합대응 교육연구단은 지난달 15~21일 만 18살 이상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증진과 위기 대비를 위한 조사’ 결과를 7일 공개했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48.1%는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정신건강 상태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좋음’은 11.4%에 불과했다. 정신건강 악화의 주요 요인으로는 △경쟁과 성과 중심 사회 분위기(37.0%)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22.3%) △물질적 안락함이나 부가 성공과 행복의 기준으로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16.6%) 등을 꼽았다.
개인의 정신건강 상태와 관련해선 전체 응답자의 33.1%가 중간 수준 이상의 우울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43.3%는 ‘외롭다고 느낀다’, 33.7%는 ‘소외돼 있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주요 감정·정서 상태를 5점 척도로 측정한 결과를 보면, 30대와 월 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의 우울 수준이 가장 높았다. 응답자의 12.8%는 ‘높은 수준의 심각한 울분’(2.5점 이상)에 해당했으며, 54.9%는 ‘장기적 울분 상태’(1.6점 이상)에 놓여 있었다. 심각한 울분의 비율은 30대가 17.4%로, 60살 이상(9.5%)의 2배에 가까웠다. 소득별로는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집단의 울분 비율이 21.1%인 반면, 월 소득 1000만원 이상 집단에선 5.4%로 차이를 보였다.
지난 1년간 심각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비율은 47.1%에 달했다. 스트레스의 주요 요인은 △건강 문제(42.5%) △경제적 어려움(39.5%) △학교·직장 내 관계 변화(30.2%) 및 고용 불안(23.7%) △정치 환경 및 부정부패(36.3%) 등이다.
지난 1년 동안 기존에 하던 역할이나 책임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정신건강 위기가 왔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27.3%였다. 이 중 51.3%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해본 적이 있었고, 20.5%는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목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한 경우(13%)도 있었지만,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정신건강 위기를 겪은 응답자의 60.6%는 위기 상황에서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낙인, 타인의 시선 등 우려와 두려움’(41.9%), ‘어떻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 지 몰라서’(22.6%) 등이었다. 도움을 요청한 경우 가장 많이 의지한 대상은 가족(53.4%)이었다. 전문가(22.4%)나 상담기관(18%)의 이용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국가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은 10% 미만이었다.
조사를 총괄한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기존 역할과 책임 수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정신건강 위기를 경험한 적이 있는 응답자가 27.3%였는데, 이들 중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경우가 60.6%에 달했다”면서 “정신건강에 대한 문제 인식과 조치를 취하는 태도 사이에 간극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개선을 위한 소통과 실천적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