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교육 붕괴 ‘트리플링’ 위기…의대생 구제책 나올까

의학교육 붕괴 ‘트리플링’ 위기…의대생 구제책 나올까

기사승인 2025-06-13 06:00:08
서울의 한 의과대학 강의실. 곽경근 대기자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의과대학생 수업 거부 사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표류하고 있다. 전국 40개 의대에서 8000여명의 의대생이 집단 유급 판정을 받았고, 이 중 40여명이 제적 위기에 놓였다. 이대로 사태가 지속되면 기존 재학생(24·25학번)과 내년 의대 신입생(26학번)까지 3개 학년이 1학년 수업을 함께 듣는 ‘트리플링’이 불가피하다. 이는 의학 교육의 질 저하와 수련 환경 악화로 이어지는 사안인 만큼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의료계와 교육계에 따르면 각 대학은 6월 말까지 미복귀 학생에 대해 유급 또는 제적 처리를 확정할 방침이다. 전국 40개 의대가 제출한 유급·제적 대상자 현황에 따르면, 의대 재학생 1만9475명 중 8305명(42.6%)이 유급, 46명(0.2%)이 제적 대상자로 확정됐다. 대학 측은 수업을 거부한 학생들에게 학기 말 성적 경고를 부과할 예정이다. 대학마다 다르지만, 학사 경고가 누적되면 제적될 수 있다.

일부 대학에선 1학년생의 90% 이상이 유급 판정을 받는 등 정상적인 학사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경숙 조국혁신당 의원이 전국 9개 국립의대를 대상으로 유급·제적 현황을 파악한 결과, 경상국립의대는 예과 1학년 185명 중 174명(94.1%)이 유급 대상자로 확정됐다. 25학번은 135명 중 128명 유급 예정이며, 24학번 이상은 재학생 50명 중 46명이 유급 대상자다. 실제 유급이 이뤄지게 되면 경상국립의대는 내년에 26학번 79명을 포함해 235명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 내년도 모집인원의 3배가 넘는 인원이 동시에 수업을 듣게 되는 셈이다.

다른 대학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달 27일 기준 경북의대는 예과 25학번 125명 전원이 학사경고 대상자가 될 예정으로 확인됐다. 또 24학번 79명 중 87.3%인 69명, 예과 2학년 85명 중 91%인 78명이 학사경고 대상자로 분류됐다. 수업 성적이 나쁠 경우 유급 대상자가 되는 본과 학생은 전체 343명 가운데 91%인 318명이다. 전북의대는 25학번 120명, 24학번 71명이 유급 예정이다.

유급을 피하기 위해 1개 과목만 수강한 학생들이 2학기에도 최소 과목만 수강하거나 복귀하지 않을 경우 유급될 수 있다. 충북의대는 지난달 7일 기준 유급 예정자가 0명이지만, 25학번 재학생 117명 중 112명이 1개 과목만 신청했다. 이들이 2학기 수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최소 강의만 수강할 경우 내년 수업 대상자는 162명으로 모집 인원인 50명의 3배가 넘는다. 강원의대도 마찬가지로 예과 1학년 94명 중 84명이 1개 과목만 수강 신청했다.

내년 예과 1학년 5500~6100명 전망

이대로라면 대부분 대학이 트리플링에 빠지게 된다. 이를 피하려면 적어도 대학이 유급·제적 행정 처리를 마치는 이번 학기 말에는 의대생들이 돌아와야 한다. 대부분 대학이 이달 종강하고 7~8월 중 성적 처리를 마치기 때문에 복귀 시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셈이다. 

대학들은 계절학기나 온라인 강의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수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며 학생들이 돌아오기만 바라고 있다. 서울 한 사립대 관계자는 “행정 처리가 확정되기 이전에라도 의대생들이 복귀한다고 하면 학사일정을 타이트하게 조정해 어떻게든 수업을 받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교육부는 1만명의 학생이 동시에 교육받을 일은 없다며 내년도 예과 1학년은 5500명에서 6100명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예년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수준인 건 분명하다. 많은 학생이 한 교실에서 같은 수업을 받는다면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실습수업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

지방 한 의대 교수는 “정원이 늘어나기 전에도 인원 대비 책걸상이 부족해서 다른 교실에 있는 걸 가져와 수업을 듣곤 했는데, 트리플링이 현실화되면 어떻게 되겠나”라며 “실습수업에서도 공간이 협소해 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텐데 제대로 된 수업이 될 리가 만무하다”고 지적했다.

국립의대 신·증축 0건…“교육 정상화 시간 많지 않아”

의대 정원 증원에 따라 국립의대 건물 신·증축도 추진됐지만, 증원이 이뤄진 지 1년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실제 공사에 착수한 곳은 단 한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증축이 예정된 건물들은 여전히 설계·행정 절차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설계와 시공을 동시에 발주하는 턴키(설계·시공 일괄 입찰) 방식이 국토교통부 심의에서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받으며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에 따라 턴키 방식으로 추진하려 했던 8개교 8개동은 사실상 사업 추진이 중단됐다. 일반 공사 방식이 적용돼야 하는 나머지 9개교 12개동 역시 대학별 증원 규모 재논의와 공간 검토 지연 등의 이유로 공사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의대 증원에 따라 건물을 짓기로 한 것이었는데, 증원 재논의 결정에 따라 학생 수가 불확실하게 되면서 사업을 잠시 중단했다는 게 교육부 측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국립의대 9개교 21개 건물 전체가 설계 및 행정 절차 단계에서 멈춘 셈이다.

서울의 한 의과대학 실습실. 곽경근 대기자

의료계는 “의대 교육을 정상화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며 사태 해결을 위한 제도적·행정적 장치를 신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대한민국의학한림원(한림원)은 11일 호소문을 통해 “정부는 의료의 본질적 가치와 의학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깊은 인식하에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 환경을 시급히 개선해 주길 바란다”면서 “불과 몇 주간의 시간적 여유가 남아 있는 지금 교육 현장이 다시 회복될 수 있는 창을 닫아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림원은 의학 관련 학문 분야에서 국내 최고 석학단체로 인정받는 단체다.

의료계 일각은 새 정부가 출범하며 의대생들의 복귀를 유도할 대책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동안 의정 갈등 해결 의지를 드러내왔던 만큼 의대생 복귀를 위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정부는 의대생들 사이에서 만연한 족보 문제 해소를 위해 문제은행 시스템 도입, 의대 교육 혁신 지원사업 등 실질적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르면 다음 달 중 출범할 것으로 점쳐지는 ‘국민 참여형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의정 대화가 물꼬를 틀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론화위원회 출범) 시간을 계속 끌 수 없어 6월 말에서 7월 초로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의대생들 대다수가 무조건 복귀하겠다는 것보다 돌아올 수 있을 만한 명분 같은 게 필요하다고 얘기한다”면서 “의료전달체계 개편이나 보건의료 인력 역할 조정 등이 논의 사항으로 남아 있는데,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된 것이 대한의사협회(의협) 전체 의견으로 정리가 되는 건지 확인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신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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