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가 공공병원·의대 신설 등을 통해 지역의료를 강화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는 의료의 양적 확대가 이뤄지더라도 정작 환자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라며 환자들의 서울 쏠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창수 대한의사협회(의협) 정책이사는 13일 서울성모병원 플렌티컨벤션에서 열린 ‘2025 대한의학회 학술대회’에서 “현 정부도 의료인력 확보 방안에 대해 여전히 양적 확대에만 집중하고 있어 아쉽다”며 “단순한 의과대학 정원 증원이나 지역의사제만으로는 환자들이 지역의료를 선택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전 공공의대 설립과 더불어 의대 지역인재 전형 확대와 지역의사제 도입을 약속한 바 있다.
김 정책이사는 “지역에 의사들이 정주할 수 있는 여건뿐 아니라 전문적 경력 관리가 중요한데 그 내용이 빠져있어 누더기 같은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의료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의료인의 지역 및 특정 진료과 기피 현상은 해결하기 역부족이다”라고 비판했다.
민간 의료기관과 공공병원의 역할 구분 및 협력 체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없다고 평가했다. 김 정책이사는 “현재 지역 공공의료기관 인건비가 60%를 넘어간다. 동일한 규모의 민간 기관은 인건비 보전이 20~30% 수준”이라며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혁파할 정책이나 대안 없이 그냥 투자만 하겠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역에 환자가 충분히 있어야 의사가 정주할 수 있다”면서 지역 환자의 수도권 쏠림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역의료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지역 의료기관 간 정보 공유 체계 구축 △의료 서비스 조정 메커니즘 도입 △지역 특성에 맞는 의료 자원 배분 최적화 △의료기관 간 효율적인 환자 이송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마 교수는 “지방이 소멸되면 이러한 정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면서 “이를 해결할 정책은 그동안 없었고 지금의 상황은 당연한 결과다”라고 꼬집었다.
김유일 대한의학회 정책이사는 공공의대·병원 설립보다 ‘지역의사전형’ 도입이 지역의료를 살리는 데 더 실용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김 이사는 “공공의대 신설과 교육 병원 마련 비용이 만만치 않다”면서 막대한 비용이 요구된다고 했다. 김 이사가 제시한 국회예산정책처 자료에 따르면, 1개 의대 설립에 2000억원 정도의 예산이 필요한데 이는 작년 국립의대 평균 연간 등록금 800만원을 2만5000명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 금액이다.
김 이사는 “지방의료원들이 막대한 적자를 떠안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의대와 교육병원의 실제 재정 부담은 훨씬 클 것”이라며 “내년부터 의대 정원은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에서 정하게 돼 있기 때문에 신설 공공의대에 더해 추가 공공의대 정원을 확보해야 하는 데 제한이 따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의대 입시에서 일정 기간 지역 필수의료 종사를 조건으로 선발하는 지역의사전형이 기존 의대를 이용해 바로 시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실용적일 수 있다”라며 “다만 이 경우에도 신규 의사가 의무 복무 기한을 잘 지키고 지역·필수의료를 택할 수 있도록 지역의 환경적 요인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윤석열 정부에서 의료개혁을 추진해온 보건복지부는 새 정부에서 개혁 방안을 이어나가기 위해 고심이 깊은 모습이다. 강준 복지부 의료개혁총괄과장은 “충분한 의료인력의 확보를 위한 다양한 제도를 모색할 것”이라며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에서 의대 증원,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등 인력 공급 확충 문제를 과학적 근거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해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일방적인 개혁 추진이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진짜 의료개혁을 추진하겠다며 ‘국민 중심 의료개혁 공론화위원회’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외에도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국가 책임 강화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보상 강화 △의료분쟁조정중재원 기능 강화 등을 약속했다. 이는 모두 윤석열 정부 의료개혁 과제에 포함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