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액 주주 권익 보호 강화를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제약·바이오업계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주주들의 투자 심리를 자극해 투자금 확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오는 반면,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 결정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8일 제약바이오업계 등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 3일 본회의에서 이재명 정부 1호 협치 법안으로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개정안에는 이사가 회사 뿐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지도록 법적으로 명문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이른바 ‘3%룰’을 적용하고,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전자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한다. 상장회사의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기존 사외이사 명칭은 ‘독립이사’로 전환한다.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존 대주주 중심이 지배구조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전망이다.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제약·바이오업계도 큰 변화를 맞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파마리서치는 인적분할 추진 계획을 발표한지 한 달여 만에 분할절차 중단 및 분할계획서 철회를 결정했다고 8일 공시했다. 회사 측은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우려,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 소통의 충분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며 “이를 신중하게 받아들여 이번 결정을 재검토하게 됐다”며 철회 배경을 설명했다. 이를 두고 상법 개정안 통과 이후 주주가치 훼손 가능성을 고려해 의사결정을 바꾼 첫 사례라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에서는 법이 시행되면 경영진의 권한 행사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신약 개발을 위해 많은 연구개발(R&D) 비용이 투입되는 제약·바이오 산업 특성상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해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경영진 입장에선 당장 성과가 나지 않아도 신약 개발을 위한 투자를 단행해야 하지만, 주주들은 단기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하거나 배당 성향을 높이는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주주 간 이견이 발생할 경우 기업의 일상적 경영 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주가 직접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점 역시 걸림돌이다. 경영 판단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판단하는 주주들이 이사들에게 손해배상이나 배임죄 고발 등 소송을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소송을 의식한 이사들이 주주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안에 대해 신속한 결정을 하지 못해 투자가 위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제약·바이오업계는 현재도 주주가 모여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한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다른 산업 분야보다 바이오 업계에 타격이 클 것”이라며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 명문화 조항이 자칫 신약 개발 보다 기존에 있는 파이프라인에 집중하는 식의 의사결정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법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황이라 당장 시행되면 혼선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기업의 책임 경영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투자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또다른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기업의 책임성이 제고될 수 있어 진정한 기술력을 갖춘 바이오 회사들에겐 중장기적 관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 “투자를 유치하는 측면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