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화장품 시장에서 초고가와 초저가 제품 모두에 대한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며 소비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경기 불확실성과 고물가 영향 속에서 소비자들은 같은 품목 안에서도 기초 제품은 저렴하게, 만족감을 주는 제품에는 과감히 지갑을 여는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CJ올리브영은 지난해부터 프리미엄 화장품을 모은 ‘럭스(LUX)’ 매장을 주요 상권에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올리브영은 지난 2023년 프리미엄 화장품 전문관인 ‘럭스에딧(Luxe Edit)’을 선보이고, 설화수, 에스티로더, 키엘 같은 정통 프리미엄 브랜드부터 라부르켓, 올라플렉스, 시미헤이즈뷰티 같은 신진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라인업을 갖췄다. 해당 매장은 온라인몰뿐 아니라 성수N, 명동타운, 센트럴강남타운 등 주요 오프라인 거점에 배치됐다.
성수N매장을 방문한 백지연(27·여)씨는 “평소에는 가성비 좋은 인디 브랜드 제품을 자주 쓰는 편인데, 쿠션이나 파운데이션처럼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은 아무래도 하루 종일 쓰고 나면 만족감 차이가 나서 고가 브랜드를 쓰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격은 비싸도 확실히 발림성이나 커버력 같은 게 다르다고 느껴져서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방문객 정지소(36·여)씨도 “평소에는 화장품을 최대한 할인받아 사는 편이지만, 가끔은 기분 전환용으로 명품 브랜드 립스틱이나 립밤을 산다”며 “4만~5만원 정도면 완전히 부담될 정도는 아니라서 나를 위한 선물로 사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컬리와 쿠팡 등 온라인 유통사도 프리미엄 뷰티 강화에 나섰다. 컬리는 럭셔리 뷰티를 강조한 ‘뷰티컬리’를 통해 성장 중이다. 컬리의 지난해 럭셔리 뷰티 제품 매출은 전년 대비 40% 증가했다. 해외 브랜드 단독 컬렉션을 론칭해 ‘프리미엄 럭셔리 뷰티’ 키워드로 VIP 고객층을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쿠팡도 지난해 10월 럭셔리 뷰티 서비스 ‘알럭스(R.LUX)’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명품 뷰티 시장에 진입했다.

반면 초저가 시장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는 경기 불안이 길어질수록 소비자들이 같은 화장품 안에서도 지출 범위를 더 명확히 나눈다고 보고 있다. 기초 제품은 최대한 저렴하게 구매하고, 만족감이 큰 제품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는 방식이다. 이에 따라 온라인몰과 오프라인 로드숍 모두 고가와 저가 제품군을 동시에 확대하며 선택지를 늘리고 있다.
최근 생활용품기업 다이소엔 ‘뷰티템’을 찾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화장품 매출 증가율은 144%에 달한다. 성능이 좋다고 입소문이 난 제품을 저가에 선보이며 품절 대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스킨이나 마스크팩 등 기초 화장품부터 섀도우나 립밤 등 색조 화장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대학생 김수빈(22·여)씨는 “요즘에는 마스크팩부터 선크림까지 다이소에서 한꺼번에 산다. 요즘 기초 제품들은 전반적으로 성능이 다 괜찮고, 다이소 제품 중에서도 가성비 좋고 성능 좋은 게 많아서 굳이 비싼 걸 살 필요는 없는 것 같다”며 “가격이 저렴하니까 이것저것 써보고 나한테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어서 부담도 없고 좋다”고 말했다.
온라인 플랫폼도 저가 뷰티 수요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무신사·지그재그 등 젊은 소비자층의 이용률이 높은 플랫폼은 쿠폰·타임세일을 활용해 저가 화장품 거래액을 키우고 있다. 실제로 무신사 뷰티의 지난해 거래액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으며, 올해 1분기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30% 성장했다. 지그재그가 운영하는 뷰티 전용관 ‘직잭뷰티’의 지난해 거래액은 전년 대비 137%, 올해 1분기 거래액은 81% 상승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업계는 화장품이 경기 영향을 받는 동시에 ‘작은 사치(Small Luxury)’의 대상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뷰티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은 스킨·로션 같은 기본템은 아끼면서, 립스틱·향수처럼 기분전환 아이템엔 과감히 투자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굳이 화장품 하나 사러 백화점까지 가기엔 부담스럽고, 온라인 직구는 번거롭다는 소비자 니즈를 올리브영 럭스나 쿠팡, 컬리 등 다양한 유통업체가 채워주면서 양극화는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 국내 화장품 제조사 관계자도 “불황이 길어질수록 소비자의 선택과 집중이 더욱 뚜렷해진다”며 “화장품은 단가가 낮아도 심리적 만족감이 커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도 가격대별로 소비 양극화가 빠르게 굳어지는 특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중가 브랜드들은 가격 경쟁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질 수 있어, 타깃층 세분화와 채널 전략, 제품 콘셉트의 명확화가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