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사고 매년 늘어도…차단기 의무화 한국만 ‘뒷전’

전기 사고 매년 늘어도…차단기 의무화 한국만 ‘뒷전’

5년간 387건 증가세 뚜렷
美·캐나다 등은 법제화 완료
“국내 제품 신뢰성 아직 한계”

기사승인 2025-09-06 06:00:08 업데이트 2025-09-06 07:40:10
지난 2023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이 진행되고 있다. 곽경근 기자

# 지난 6월 부산진구 한 아파트에서 10·7세 자매가 화재로 숨졌다. 불과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기장군에서 또 다른 화재가 발생해 8·6세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부산시 소방재난본부는 두 사건의 공통 원인을 멀티탭으로 추정했다. 당시 멀티탭에는 에어컨, 컴퓨터 등 고용량 전기 기기가 연결돼 있었다.

지속되는 폭염으로 가정 내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전기 사고도 늘고 있다. 미국, 캐나다는 전기 화재 예방을 위해 아크차단기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국내에서는 권고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전기 화재·감전 사고는 해마다 증가 추세다. 최근 5년간(2020~2024년)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접수된 멀티탭·콘센트·플러그 관련 사고는 총 387건으로, 2020년 79건에서 2024년 101건으로 27.8% 늘었다. 같은 기간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접수된 관련 화재 역시 620건에서 869건으로 증가했다.

사고 원인 중 44.7%는 감전, 누전, 합선 등 전기적 요인이었다. 특히 위해가 발생한 240건 중 84.6%(203건)는 주택에서 일어났다.

그럼에도 전기 사고 예방 정책은 단발성 지원이나 권고에 그치고 있다. 서울시는 연말까지 노인·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낡은 전기 설비 점검에 나선다. 정부도 화재 취약 필로티 공동주택 3만동에 아크차단기를 보급하겠다고 3일 밝혔다. 이 장치는 전기불꽃(아크)을 감지해 전원을 차단하는 장치지만, 현재는 누전차단기와 달리 설치 의무가 없다.

해외는 법제화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은 1990년대 후반 연평균 7만3500건의 전기 화재에 시달리다 2002년 주택 내 아크차단기 설치를 의무화했고, 이후 9년 만에 전기 화재가 절반 이상 줄었다는 보고가 나왔다. 캐나다도 같은 해 설치 의무화를 시행했다. 독일과 영국은 각각 2016년과 2022년 요양원 등 공공건물에, 뉴질랜드는 역사 유적·저장시설·학교 기숙사 등에 설치를 의무화했다. 국내에서는 소방청 가이드라인을 통해 권고만 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한국전기설비규정’ 개정안에 아크차단기 의무화 내용을 담아 행정예고했으나 법제화 시점은 불투명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제품의 실효성을 문제 삼는다. 김성제 방재시험연구원 화재조사센터 책임연구원은 “재현 실험 결과 국내 아크차단기의 효용성에 의문이 들었다”며 “당시 시중 제품은 아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가격도 누전차단기의 30배에 달해 효율성이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와 국내 아크차단기는 기술 수준과 품질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책임연구원은 또 “멀티탭 화재는 아크 외에도 과부하로 발생할 수 있다”며 “벽 콘센트와 대형 가전 사이 거리가 멀어 멀티탭을 쓸 경우, 고용량 멀티탭을 단독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노유지 기자
youjiroh@kukinews.com
노유지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추천해요
    0
  • 슬퍼요
    슬퍼요
    0
  • 화나요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