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중소기업의 기술탈취를 방지하기 위해 한국형 증거 개시 제도, 손해배상액 산정 현실화 등 실효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는 10일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중기부, 공정거래위원회, 특허청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지난달 12일,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기술탈취 근절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과 부처 간 충분한 논의, 그리고 민·관 합동 간담회를 통한 현장 의견 수렴 등을 거쳐 마련됐다.
특히 그간 현장간담회 등에서 나온 ‘기술탈취 피해 입증이 어렵고, 소송에서 승소해도 손해배상액이 낮아 피해를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현장 의견이 대책에 반영됐다.
이번 대책은 △피해기업이 불리하지 않은 소송 환경 △침해당한 기업이 회복할 수 있는 충분한 보상 △기술탈취를 막는 든든한 울타리 제공을 목표로, 4대 중점 추진 과제를 통해 진행된다.
기술탈취 피해사실 입증 지원 강화
먼저, ‘한국형 증거 개시 제도’가 도입된다. 기술자료·특허·영업비밀 침해 관련 손해배상소송에서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현장을 조사하고 그 결과가 증거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전문가 사실조사 제도를 마련하고, 법정 밖에서 진술 녹취와 불리한 자료 파기 등을 하지 못하도록 자료보전명령 제도가 도입된다.
‘자료제출 명령권 신설 및 제공자료’도 확대된다. 법원이 손해배상소송에서 중기부, 공정위 등 행정기관에 행정조사 자료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신설해 기술침해 여부 판단을 돕고 신속한 재판을 유도할 예정이다. 또한 법원이 중기부에 요구할 수 있는 자료의 범위를 현행 행정조사 관련 자료에서 디지털 증거자료까지 포함시키며, 조사를 거부·방해하거나 기피하고 미제출하는 경우에는 5000만원 이하의 과태료 부과가 가능하도록 한다.
또, ‘행정조사를 통한 침해 입증 및 제재’를 강화하기 위해 사건 단계별 행정조사를 보강한다. ‘접수’ 단계에서는 기술탈취 피해기업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익명으로 제보할 수 있도록 하며, ‘조사’ 단계에서 중기부는 별도의 신고 없이도 조사에 착수할 수 있는 직권 조사를 도입하고, 공정위는 기존 직권조사를 기술탈취 빈발 업종 중심으로 강화해 법 위반행위를 적발·제재한다. ‘조치’ 단계에서는 현재 시정권고에 불과한 중기부 행정조사의 제재 수준을 시정명령이 가능하도록 개선하고, 중대한 위법행위인 경우 과징금 부과도 추진한다.
해킹, 불법 취득한 영업비밀을 누설하는 재유출 행위 등 신종 수법에 의한 기술유출도 영업비밀 침해행위 처벌 대상에 포함된다. 나아가 국가핵심기술 해외 유출에 대한 처벌 대상에 브로커행위, 미신고 수출을 포함하고, 벌금을 현행 최대 15억원에서 최대 65억원으로 상향한다.
손해배상액의 현실화
중기부는 기술탈취 소송과 관련한 손해배상액을 현실화하기 위해 침해당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투입한 비용도 소송에서 기본적인 손해로 인정될 수 있도록 ‘손해액 산정기준을 개선’한다. 또한 피해기업의 기술과 유사한 정부 R&D 과제 연구개발비 정보를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피해기업이나 법원의 요청이 있을 경우, 피해기업의 연구개발비 범위를 산출하고, 이를 손해배상 소송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방식이다.
또, 손해액 산정의 객관성 확보를 위해 현재 법관의 재량으로 많이 판단되는 손해액의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법원이 평가 역량 있는 전문기관에 손해액 산정을 촉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손해액 산정 시 필요한 기술침해 소송판례, 기술개발비용 정보, 기술거래 정보 등을 기술보호 정보 제공 온라인 플랫폼인 기술보호 울타리로 통합 수집·관리한다.

기술탈취 예방 실효성 강화
아울러 중소기업 기술탈취 예방 대책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해 부처 합동 기술보호 설명회를 연 5회로 확대 개최하고, 찾아가는 기술보호 교육을 신설해 기술보호 정책 홍보를 강화할 예정이다. 중기부·산업부·공정위·특허청 부처별로 맞춤형 기술보호 컨설팅, 교육을 확대 지원한다. 또한 AI를 활용한 자동화된 영업비밀 분류 및 유출방지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중소기업에는 보안설비 구축을 지원할 예정이다.
중소기업을 대기업 수준의 기술유출 예방·사후 대응 역량을 갖춘 선도기업으로 집중 육성하는 방안도 도입된다. 나아가 현재 1만7000여 건인 기술임치 건수를 2030년까지 3만건으로 확대해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분쟁 시 증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현재 영업비밀에 대해 운영 중인 특허청 원본증명서비스를 아이디어까지 확대해 추진한다.
기술탈취 근절 추진체계 효율화
중기부는 피해 중소기업들이 어느 부처에 신고해야 할지 몰라서 겪는 어려움을 개선하기 위해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과 ‘중소기업 기술분쟁 신문고’도 신설한다. ‘기술탈취 근절 범부처 대응단’은 중소기업 기술보호와 관련한 부처가 한데 모여 정책 추진 방향을 논의하고, 또한 국민신문고와 유사하게 피해기업이 ‘중소기업 기술분쟁 신문고’에 기술분쟁 민원을 신청하면 소관부처로 민원을 연계할 예정이다.
기술탈취 사건 수사체계를 고도화하고 공조를 강화하기 위해 특허청 및 경찰청의 기술경찰 조직과 인력을 확충하고, 첨단산업, 제조업 분야 중심으로 기획·인지 수사, 집중 단속을 실시한다. 또한 사건의 기술적 쟁점에 대해서는 특허청이 기술자문을 실시해 중기부 등 유관 부처와 수사기관에 제공한다.
한편 중기부·특허청으로 접수된 행정조사 사건에 대해 추가 범법행위가 의심되는 경우에는 사건을 수사기관에 이관해 즉시 수사가 착수될 수 있도록 하는 패스트트랙을 운영한다. 중기부와 경찰청이 공동으로 기술탈취 피해기업 현장에 방문하는 현장 밀착형 초동 지원도 강화할 계획이다.
법원과 검찰에서 전달받은 사건을 특허청 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가 조정하는 조정 연계도 대구·부산 지방법원까지 확대를 추진한다. 산업재산권분쟁조정과 특허청 수사·조사 간의 연계 프로세스도 구축할 예정이다.
아울러 ‘기술분쟁 조정제도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현재 3인 이상으로 구성하는 중소기업 기술분쟁조정 1인 조정부를 신설하해 당사자 간 합의가 명백하거나, 5000만원 이하의 소액 사건의 경우 신속한 처리가 가능하도록 한다. 직권조정을 도입해 신청인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는 소액 사건에서 조정부의 조정안을 이유없이 거부한 경우 조정부의 직권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성숙 중기부 장관은 “오늘 발표한 중소기업 기술탈취 근절 방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공정과 신뢰에 기반한 공정성장 경제환경의 실현”이라며 “대책이 실효성 있게 현장에 안착하도록 부처 간 협업을 통해 세밀하게 정책을 관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