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 해체를 앞두고 이억원 신임 금융위원장이 취임했다. 조직개편을 둘러싼 혼란을 수습하는 한편, 배드뱅크(장기 연체채권 정리 프로그램) 출범 등 정책 현안에 대응하는 것이 이 위원장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 위원장은 15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2층 대강당에서 금융위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취임식을 가졌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이 위원장에 대한 임명안을 재가했다.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지만 임명을 강행했다.
금융당국 개편 난항…내부 불만 진화 급선무
당장 이 위원장 앞에는 금융당국 조직개편이라는 거센 시험대가 놓여 있다. 개편안 핵심은 금융위의 정책 기능은 재정경제부가, 감독 기능은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가 맡는 것이다. 재경부는 국제금융 정책 기능뿐 아니라 국내 금융정책까지 총괄한다. 금융감독원 산하에 있던 금융소비자보호처는 분리해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으로 격상한다. 기존 ‘금융위-금감원’ 체제는 ‘재경부-금감위-금감원-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 4개 축으로 재편돼 금융위는 17년 만에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시한부’ 조직의 수장이 된 이 위원장은 세종 이전과 인력 재배치 등 조직 분리를 준비하며 내부 반발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 위원장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취임식 이후 반발을 의식한 듯 “(금융위 직원) 여러분을 생각하면서 제 솔직한 마음을 담아 짧은 개인적인 편지를 써봤다”며 공식적인 취임사와 별도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갑작스러운 조직 개편 소식으로 인해 (직원)여러분들이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을 공감한다”면서도 “공직자로서 국가적으로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그 정해진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것도 우리의 책무이자 의무”라고 했다. 사실상 조직 해체를 받아들인 입장으로 해석된다.
이 위원장은 “조직의 모양은 달라질 수 있어도 금융 안정과 발전을 통해 국민 경제에 기여한다는 가치와 사명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 여러 일들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여러분의 목소리를 먼저 듣고 크고 작은 어려움에 세심히 귀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파열음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내년 1월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조직개편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험로가 예상된다. 정부조직법은 행정안전부 소관이지만 ‘금융감독위원회 설치법’ 등은 정무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정무위원장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인 만큼 야당 반발이 커질 경우 25일 본회의 처리도 불투명하다. 이 대통령이 “패스트트랙(신속지정 안건) 지정도 가능하다”고 언급하면서 최장 내년 하반기까지 불확실성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패스트트랙을 활용하더라도 상임위 심의에 최대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체계·자구 심사에 최대 90일, 본회의 부의 후 표결에 최대 60일 등 최장 330일이 소요된다. 해당 기간 사이 금융 정책·감독 등에도 일부 공백과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드뱅크 출범 지연…5% 매입가율·분담비율 협상 ‘줄다리기’
이 위원장의 또 다른 숙제는 배드뱅크다. 113만 명의 장기 연체자 채무를 탕감하기 위한 이 프로그램은 다음 달 출범을 목표로 하지만, 연체채권 매입가율과 업권별 분담 방식을 둘러싼 갈등으로 진척이 더디다. 정부가 제시한 매입가율은 평균 5% 수준으로, 영세 대부업체들이 통상 자체 채권추심업체를 통해 부실채권을 20~30% 가격에 매입해온 것과 차이가 크다. 대부업계는 일괄 5% 매각은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재원 분담도 난제다. 정부는 배드뱅크 설립 비용 8000억원 중 절반인 4000억원을 금융권에서 조달하기로 했지만, ‘누가 얼마나 부담할지’를 놓고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당초 은행이 3500억원을 부담하고 나머지 업권이 500억원을 분담하는 방안이 유력했으나, 매입 대상인 ‘5000만원 이하 7년 이상 연체채권’이 대부업체와 카드사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협의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 대부업계 관계자는 “대부업계 분담금을 없애는 대신 매입가율을 낮추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 얘기도 쏙 들어갔다”며 “금융당국도 ‘업권 자율’이라며 구체적인 입장을 내지 않아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어 “채권을 싸게 팔면서 분담금까지 더 부담해야 하는 이중고를 감수하고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르면 29일 정부는 금융협회들과 협약식을 열고 장기 연체채권 매입·정리 절차를 공식화할 방침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도 이날 협약식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
캠코 관계자는 “29일 협약식이 후보일 중 하나지만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면서 “연체채권 매입가율은 재조정 계획이 없으며 협약식에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분담비율은 배드뱅크 출범의 선결 조건이 아니기 때문에 협약식 이후에도 조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대부금융협회 관계자 역시 “협약식에서 채권 매입가율이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며 “애초 정부가 5%를 기준으로 전체 채권 규모를 산정해 온 만큼 매입가율이 달라지긴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