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신라가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DF1 권역 사업을 내년 3월 중단하기로 했다. 국내 면세업계의 누적된 적자구조와 임대료 갈등이 불러온 철수 결정에 공항 면세점 판도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차기 사업권 입찰 후보로는 중국국영면세점그룹(CDFG)의 재도전 가능성이 주목된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전날 이사회를 열고 인천국제공항 DF1 권역 영업을 오는 2026년 3월 17일부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측은 공시를 통해 “과도한 적자가 예상돼 지속운영 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다고 판단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향수‧화장품과 주류‧담배 품목으로 구성된 인천공항 DF1 권역은 총 4258㎡ 규모로, 제1·2여객터미널 모두에 걸쳐 있다. 이번 DF1 구역 철수로 신라면세점은 인천공항에서 패션‧뷰티 품목이 들어선 DF3 구역만 운영하게 된다.
신라면세점이 DF1 권역에서 1년간 거둔 매출은 약 4292억원으로, 호텔신라 전체 매출(약 3조9475억원)의 10% 수준에 달한다. 그러나 누적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장기 성장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라는 단기적으로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사업권 반납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면세 시장의 주 고객군 소비패턴 변화와 구매력 감소 등으로 급격한 환경 변화가 있었다”며 “인천공항공사에 임대료 조정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인천공항에서 영업을 지속하기에는 손실이 너무 큰 상황이어서 부득이하게 사업권을 반납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호텔신라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60% 이상 줄었다. 면세(TR) 부문의 매출은 8502억원으로 2.1% 증가했지만 113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상반기 누적 적자는 163억원에 달한다. 지난해에도 면세 부문 영업손실은 697억원에 이르렀다.
재무 부담은 신용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4월 호텔신라의 장기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호텔신라의 호텔·레저 부문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면세사업 부진이 발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인천공항 면세점의 임대료 부담은 큰 압박으로 작용했다. 신라와 신세계면세점이 지난해 납부한 임차료는 총 5051억원으로, 두 회사 전체 매출의 39%에 달한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외부환경 변화 등으로 인한 면세업계의 장기 부진상황 속에서 임대료 조정에 대한 공사와 면세사업자 간 입장차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해 결국 사업철수라는 상황이 빚어진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사업권 반납에 따른 위약금도 부담이다. 신라는 임대보증금 성격의 약 1900억원을 위약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신라면세점 관계자는 “1900억원 규모의 위약금이 작지 않지만, 부진한 상황에서 사업을 지속하는 것보다 재무구조 개선에 집중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국내 면세사업의 기반이 사실상 붕괴돼 파국에 이르렀다. 이 상황에 해외 기업이 진입할 여지도 생겼다”며 “소비패턴 변화와 임대료 체계가 동시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임대료 체계는 ‘여객당 일정 금액을 소비한다’는 가정 위에 세워졌지만, 이 전제가 이미 무너진 상황”이라며 “고정 임대료를 유지하되 매출과 연동하는 방식으로 손질할 필요가 있다. 국내 면세점 사업은 이제 제로베이스에서 새롭게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라 떠난 인천공항 DF1…중국 CDFG 재도전 주목?
빈자리가 생긴 인천공항 DF1 권역을 두고 글로벌 1위 중국의 국영면세점그룹 CDFG(China Duty Free Group)의 도전 가능성이 재차 주목받고 있다. 2023년 입찰 당시에도 의미 있는 행보로 평가됐던 만큼, 이번 공백을 노릴 수 있다는 전망이다.
2023년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 당시 DF1에는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 롯데면세점에 더해 중국 국영기업인 CDFG가 도전장을 냈다. 해외 사업자 가운데 유일하게 참여한 CDFG는 당시 ‘국내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인천공항공사 출신 인사를 영입했다’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입찰 결과 신라면세점이 이용객 1인당 임대료 8987원을 제시하며 가장 높은 가격으로 DF1 사업권을 따냈다. 신세계면세점은 DF2‧4를 확보했으며, CDFG는 DF1구역에 대해 7388원을 써내며 신세계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금액을 제시했다.
당시에도 글로벌 면세업계 1위인 CDFG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한국 시장 진출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이번에 신라면세점이 2026년 3월 DF1에서 철수하기로 하면서, 업계에서는 CDFG가 다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국내 사업자의 철수로 입찰 가격이 낮아질 경우 CDFG가 재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글로벌 여행 수요가 완전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이달 말부터 중국 단체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한시적으로 허용되면서 중국 단체 수요 확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CDFG가 자국인의 해외 소비를 겨냥해 한국 진출을 노릴 수 있다는 해석이 뒤따른다.
인천공항공사 역시 DF1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공사 관계자는 “계약서에 따라 현 사업자는 해지 이후에도 6개월간 의무영업을 이어가야 한다”며 “그 기간 안에 후속 사업자를 조속히 선정해 공항 정상운영과 여객 불편 해소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